10살 나무하러 갔다 사고
돈 없어 치료 제대로 못해
살아보려 악착같이 일만
어렵게 얻은 가정 잃고서
전 재산 사기에 우울증도
▲ 지뢰로 한쪽 손과 한쪽 눈을 잃은 서정호씨가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경성대 사진학과 김문정 교수

#칠전팔기 내 인생

1967년 3월18일. 지뢰 피해자 서정호(67)씨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서씨는 산에 나무일을 하러 갔다가 한쪽 손과 한쪽 눈을 잃었다.

6~70년대만 해도 전쟁 난에 끼니 거르는 일이 허다했고 7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서씨는 산에서 구한 나무를 내다 팔은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서씨는 지뢰를 손에 쥐었다가 손을 잃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탓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 초등학교만 마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그날도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둥근 고철 하나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저는 이게 양은인가 싶어서 내다 팔면 돈이 좀 되겠다는 생각에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산에서 내려왔죠. 손에 쥐었던 지뢰가 갑자기 터진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 났을 땐 이미 손과 눈을 잃은 뒤였죠.”

급히 병원으로 옮겨진 서씨를 당시만 해도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던 터라 주변에선 그가 깨어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단다.

“얼마나 아팠는지 팔을 톱 같은 걸로 끊어내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죠. 뼈가 다 튀어나올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각했는데 결국 나머지 손 한쪽을 끊어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고를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무서워서 집 밖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졸지에 불구자 신세가 된 서씨는 치료비를 대지 못해 15일 만에 병원 밖을 나와야 했다. 잘린 팔에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보다 더 큰 상처는 마음의 상처였다.

“사고 직후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상태로 병원을 나왔고 장애인이 된 저는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를 받았죠. 남들의 손가락질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아버지의 외면이었습니다. 멀쩡하게 낳아놓았더니 사람 구실이나 하겠냐는 핀잔을 종종 하셨는데 사소한 말 조차 저에겐 상처가 됐습니다.”

서씨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일을 했다. 장애인이 된 서씨가 온전히 일하기 위해선 비장애인들보다 곱절의 노력이 필요했다.

“한자를 제법 할 줄 알아서 그때 마을 사람들의 출생신고나 혼인신고 같은 걸 제가 도맡아서 하곤 했습니다. 이걸 밑천 삼아 공무원이 되려고 알아봤는데 장애가 있단 이유로 거절당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일밖에 없더라고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악착같이 일만 했죠. 지금은 저만한 일꾼 없다면서 양손을 쓸 수 있는 비장애인들보다도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반대하는 결혼으로 오랜 설득 끝에 가정을 꾸리게 됐지만 아내와의 잦은 불화에 결국 가족 모두가 등을 돌렸다.

“몸이 성치 않은 저로서는 결혼도 힘든 역경 중의 하나였죠. 장인 장모님이 계신 서울까지 수십 번을 오가며 긴 설득 끝에 어렵게 결혼에 성공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모진 시집살이를 힘들어하던 아내는 결국 돌아서게 됐고 자식들마저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가족의 연을 끊을 수 없던 저는 최근까지도 아들과 아내가 일구는 밭일을 도와주곤 했는데 작업에 쓰던 농기구를 제가 가져왔단 이유로 저를 고소했고 벌금까지 떠안는 불행을 겪게 됐습니다. 아들과 아내는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저에 대한 원망이 큰 것 같네요.”

모진 시련과 외로움은 우울증약이 없인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게 만들었다. 외로움에 사무친 그때,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베트남 신부를 맞이했지만 이마저도 사기를 당해 서씨가 모아둔 전 재산을 모두 잃게 됐다.

우여곡절 모진 인생살이에 지칠 대로 지칠즈음, 서씨에게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다. 서씨는 '인생나무 인생사진전'에 참여한 것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다.

“제안을 받고 많이 망설여졌죠. 거울 앞에 서기조차 두려운 제가 카메라 앞에 서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사진촬영 맡아주신 교수님께 제가 이런 말도 했어요. '교수님이 제 사진 보면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워낙 험하고 추하게 나올지도 모르니 교수님 놀라지 마세요'라면서요. 아마 지금 사진이 제 첫 사진이자 마지막 사진이 되지 않을까요? 여태껏 살면서 사진 한장 찍은 적 없는데 이 사진 영정 사진으로 쓸랍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