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예방 차원에서 실시하는 살처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무차별적•획일적으로 이뤄지는 살처분이 전염병 발병과 확산을 막을 근본적 수단이 될 수 없어 축산농가의 손실만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실효성이 부족한 살처분을 거듭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규정은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농장으로부터 반경 3㎞내에 사육하고 있는 동물을 살처분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역학적 특성, 위험도, 지형적 여건 등에 따라 자치단체장이 정부와 협의해 살처분을 축소하거나 제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두 살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는 최근 5년 동안 한 번도 예외적 상황을 적용하지 않았다. '전염병 발생=살처분'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는 2018년 12월 AI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긴급행동지침을 내려 살처분 대상을 AI가 발생한 지점 반경 500m 내에서 3㎞로 확대했다. 경기도는 2015년부터 지침이 개정되기 전까지 309개 농가에서 2113만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투입된 예산은 1618억원에 달한다. 2018년 개정 이후엔 살처분 범위가 넓어져 지금까지 83개 농가에서 688만마리를 살처분했다.

전염병 확대 방지를 위해 동물 살처분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에만 의존하고 도식적•기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 주민들이 반발하기도 한다. 화성 산안마을은 1984년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살처분 대상에 포함되자 경기도에 살처분 명령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대량으로 동물을 살육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도 대두된다. 동물도 최소한의 생존권은 있다. 인간이라고 해서 동물을 무조건 살육할 권리는 없다. 동물들과의 공존을 추구할 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더욱 빛난다.

필요에 의해 살처분을 하더라도 범위를 일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상황에 맞게 진행하는 것이 순리며 효율성도 담보될 것이다. 동물의 면역력이 향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백신을 투약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