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고 보름이 지났다. 보통은 지난해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새해에 거는 소망을 빌고, 서로가 덕담을 주고받는 시기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마스크로 꽁꽁 막고 지낸 탓인지 해를 넘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여전히 2020년에 멈춰서 있는 기분이다.

마스크로 막아버린 것은 입과 코만이 아니었다. 가급적 외부의 만남을 줄이다보니 부동산이 올랐는지 주식시장이 뜨거운지 교육문제는 어떤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서 있으니까 다른 세상도 그렇게 멈춰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풀기도 전에 이미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저금리시대에는 유동자금이 많아서 부동산과 주식으로 자금이 쏠린다든지, 교육과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든지, 코로나 전염병시대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등에 대해 코로나 이전의 세상과는 달라져 있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이렇게 무지했던 자기를 탓하기도 힘이 들 지경이다. 집에 마스크가 몇 장 남아있는지, 비말 마스크는 구할 수 있는지, 몇 장의 마스크를 더 써야 이 사태가 종결될 것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쳐다보고 방역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불평을 터뜨리고 있었을 뿐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편을 감당하며 만남을 줄이고 열심히 기다리기만 하면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줄 알았다. 잃어버린 시간만큼 더 열심히 살면 원상복귀하고 잃었던 시간도 되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멈춰있다고 생각했던 세계에서도 여전히 삶의 문제는 진행 중이었다.

집부자와 벼락거지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양도세가 늘고 주식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듣고 나서 '뭔가 해봐야 하는 것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상투를 쥐는 것 같아서 움직일 수도 없다.

스스로 반성하기보다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최소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 때문에 또 다시 성실하게 반성하기 전에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많던 전문가들을 통해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책이라도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 자기가 정보를 구해야지 무슨 남 탓을 하느냐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정책은 따라야 하고, 성실한 것이 제일 중요하고, 살림이 어려울 때는 아껴써야 한다는 상식적인 믿음과 태도로 세상을 살아왔기에 더 넓은 관점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 줄은 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마스크를 벗어라. 부동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자산으로 평가받지 않는 사회가 올 것이다. 성실히 살면 기회가 올 것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는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회에 살고 싶은 강력한 소망 때문이다.

이제 K-방역은 K-희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참아라 기다려라 따르라”가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일어날 일에 대해 심리적으로 준비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각자의 살 길을 찾느라 분열된 사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회는 대부분의 우직한 사람들로 유지된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덕담이 필요한 시간이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