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술꾼들 사이에 계영배(戒盈杯)가 화제를 모았다. 술집에서 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선물로 오가기도 하는 등 인기만점이었다. 술을 즐기던 어떤 이는 평생 계영배를 옆에 두고 살겠다고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마음 속으로나마 그 의미를 지키겠노라고 다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들은 흐지부지 끝났지만, 계영배가 주는 가르침만은 여전히 뇌리에 남는다.

계영배는 곧 '가득 참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과음을 막으려고 잔에 술이 7부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나가도록 만들었다.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결국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며 살라는 선조들의 교훈을 담았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뜻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말한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지 않는가.

 

지나친 욕심은 결국 화 불러

고(故) 최인호 작가가 대하소설 '상도(商道)'를 내놓으면서 계영배는 세간에 이름을 올렸다. 실존 인물이었던 조선 후기의 거상(巨商) 임상옥(1779~1855)의 얘기다. 그는 잔에 7할이 넘는 술을 따르면, 밑구멍으로 술이 빠져나가는 계영배를 늘 곁에 뒀다. 과도한 음주를 경계하라는 뜻과 함께 지나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담고 있어서다. 임상옥은 항상 계영배를 보며 과욕을 경계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넓은 안목과 뛰어난 사업 역량을 보였던 그는 큰 재산을 모았다. 아울러 축적한 대부분의 부(富)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도덕적으로도 당대 최고의 상인으로서 명성을 날렸다.

계영배 말고도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으니,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비유적 표현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고이면 썩는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재물을 움켜쥐고 있으면 그 재물은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재물을 소유한 이도 썩게 만든다. 모름지기 꼭 필요로 하는 재물 이상은 흐르게 해야 한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재물은 춥고 배고픈 이웃들에게 가야 한다. 그리고 저울은 속일 수 없다. 저울처럼 사람은 신의로써 대해야 마땅하다. 재물을 독점하면 그로 인해 망하고, 바르지 못하면 언젠가 파멸을 맞는다.

 

현실에 만족하는 삶 필요

사람들은 권력과 재물을 챙기고 나서도 더 가지려고 안달하기 일쑤다.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고 자만심이 커져 교만해진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자기 인격마저 잃게 된다. 결국 패가망신에 이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많을수록 주위에 나눠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선업(善業)을 쌓으면 3대가 복을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더 움켜쥐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낙마(落馬)해 비참한 말로를 겪는다.

일부 기업과 정치권 등에선 '계영'을 넘어 세상을 좌지우지하려고 애를 쓴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나곤 한다.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부를 키우고 권력을 잡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지내는 이들의 운명은 뻔하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가다간 덫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과 절제의 연속이다. 불교에선 탐욕·노여움·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치유하지 못하면, 끝없는 나락에 빠진다고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가.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격언이 무색하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물질주의와 양극화 현상도 지금·여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경주 최부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자금으로 재산을 탕진했어도, 부를 의롭게 써서 존경을 받았다.

 

계영배가 주는 가르침

누구나 살아가면서 성공을 경험하기도 하고, 실패의 쓴 잔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기에 안주할 수는 없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일마다 정성을 거듭하며 늘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임상옥은 욕심을 채우려 들지 않고 오히려 비우며 산 인물이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망하거나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달아, 거대한 부를 사회에 헌납하기도 했다. '재산은 유한하지만 정신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증명한 선각자다.

새해를 맞아 계영배가 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뜬 구름 같은 욕망에 빠져 살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되풀이되는 일상을 겪으며 짧은 세월을 아쉬워하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이런 자연의 순환 속에서 허황된 욕심은 정말 버려야 할 그 무엇이다. 훌훌 털어버리자.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정녕 아름답다고 하지 않은가.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