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10여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대선단이 청해진(완도)을 출발한다. 다행히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주고 있다. 중국 산둥반도 등주가 최종 목적지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항로는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 자연도(영종도)를 거친 후 바다를 횡단해 산둥반도에 이르는 항로를 택했다. 여러 선박에는 갖가지 진귀한 물품들로 가득했다. 중국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금은 세공품과 해표피, 일본에서 수입한 진귀한 약재들도 실려 있다. 특히 여러 도기 병에 담긴 황칠은 중국 황실에서 사용하는 물품으로 선적물 중에 가장 비싸다.

선박 가장 밑바닥에는 철제 솥들이 가득하다. 다른 물품에 비해 이윤은 크지 않지만 선박의 항해상 안전을 책임지는 사실상 평형수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선단이 최신 선박과 첨단 항해술로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국제해상교통로를 완전 장악해 중계무역을 석권한 그 유명한 장보고 선단이다. 청해진을 출발한 대선단은 여러 날에 걸쳐 진도와 군산도, 이어 서해 뱃길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태안 마도를 무사히 지난 후 대이작도에서 하루 쉬었다. 다음날 아침 바람과 파도가 심상치 않다. 그렇다고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다. 자연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항해를 재촉해 선단 맨 앞쪽 상단 우두머리가 타고 있는 큰 배에서 연신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오른다. 높은 파도를 헤치며 영흥도와 자월도 사이 섬업벌을 지나는 순간 강력한 조류와 파도가 선단을 때린다. 선단 맨 뒤편의 작은 배 한 척이 한쪽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가라앉는다. 배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은 다른 선단 배에 가까스로 구조된다. 배 한 척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상단 우두머리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선단은 자연도로 길을 재촉한다.“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발굴돼 1000년만에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된 ‘인천 영흥도선’의 당시 침몰 상황을 그려본 가상 시나리오다. 비록 가상으로 그려보긴 했지만 완전히 허구만은 아니다. 인천 영흥도선의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로 관련 전문가들도 영흥도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렇다면 인천 영흥도선은 어떤 선박일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역에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수중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수습한 목재 선박이 8~9세기 무렵 통일신라시대 배로 확인됐다. 잔존 선체는 길이 약 6m 정도에 폭 1.4m의 3단으로 결구(結構)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 위에는 철제 솥과 도기를 비롯해 비교적 무거운 선적물에 눌려 있어 운 좋게 유실되지 않고 남았다.

 현재까지 관련 학계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서해안을 운행하던 연안선박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국제무역선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 근거로 그동안 국내 바다에서 인양된 14척의 선박 중 선형이 가장 독특하다는 점이다. 영흥도선은 한선의 구조적 특징인 배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과 대양항해에 적합한 ‘첨저선’의 중간 정도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에 선박화물로 철제 솥과 황칠이 나온 점도 주목된다. 철제 솥 12점은 2점씩 겹쳐서 발견돼 선적화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황칠은 한반도 서남해안에 자생하는 황칠나무 수액을 짜서 가공한 도료로 일찍이 중국에서 황제의 갑옷, 장식품 등에 칠한 귀중한 물건으로 고대 국제 무역품일 가능성이 높다.

 인천 영흥도선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의 평가가 기억에 남는다. “인천 영흥도선은 장보고와 동시대에 교역품을 실고 가던 선박임은 틀림없다. 다만 장보고 선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최근 들어 인천 영흥도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2024년 월미도에 들어설 국립인천해양박물관과 맞물려 있다. 세계적인 해양 관련 박물관들은 자신들의 고대 선박들을 복원해 대표 전시물로 내세우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은 800년대 바이킹선박인 ‘오세베르그호’를, 이집트 쿠푸보트박물관은 수천 년 동안 모래에 묻혀 있다가 1954년에 발견된 ‘태양의 돛단배’를 각각 복원 전시하고 있다.

 가까운 중국도 마찬가지다. 2019년 문을 연 텐진국가해양박물관도 입구에 거대한 중국 고대 선박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광저우 해상실크로드박물관은 송나라 시대 난파선 ‘난하이1호’를 건져 올린 자리에 건립돼 지금도 발굴 및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목포에 위치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유물전시관에 ‘신안선’을 복원해 전시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해양박물관들은 자신들의 해양역사에 대한 정통성과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해 고대 선박 복원전시에 적극적이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도 인천 영흥도선을 복원해 대표 전시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해양박물관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해양수산부나, 영흥도선을 발굴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조차 적극적이지 않다. 

결국 인천이 나서야 해결될 모양새다. 영흥도선을 온전히 인천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연구와 보존, 복원 등에 인천의 주도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남창섭 정치2부장 csnam@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