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냇가 빨래하다 사고
두 손 되어준 엄마 죽고
먹은 나쁜 맘 뜻대로 안돼
거울 보는 것도 힘들지만
전시 계기 예방활동 용기
▲ 지뢰 폭발물 피해로 양 손을 잃은 권금자씨가 피해 참상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 앞에 용기를 내고 있다. /사진=경성대 사진학과 김문정 교수

#죽는 복도 없는 사람

“이제는 장애가 부끄럽지 않아요. 어디든 지뢰 피해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설 겁니다.”

사람과 마주칠 때면 권금자(76)씨의 손 없는 팔은 재빨리 주머니로 향한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먹고 당당히 두 팔을 내밀어 보기로 결심하지만 끝내 부끄러운 두 팔은 주머니 안에 꼭꼭 숨겨졌다. 거울에 앞에 서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그가 세상 앞에 서기 위해 용기를 냈다.

“언론사에서 취재요청이 올 때면 늘 거절해 왔었죠. 거울 앞에서 서는 것조차 힘든데 수많은 시청자가 보는 카메라 앞에는 도저히 나설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사고 이후, 자신감을 잃어 세상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런 권씨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린 일생일대의 사건이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연천 DMZ피스 브릭 하우스에서 열린 '인생나무, 인생사진' 전시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망설여졌는데 카메라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도 취해보고 직접 카메라 촬영도 해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또 저와 같은 피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분을 만나게 되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이토록 고마운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세상에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많다는 걸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죠.”

사고 이후 67년 만에 찾아온 큰 결심이었다. 그전까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권씨에겐 지금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9살 되던 해, 냇가에서 빨래하다 사고를 입었다.

“여느 때처럼 냇가에서 걸레 하나를 빨고 있었죠. 빨래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펑'하는 소리에 놀라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목격했던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양손에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랬고 마을 사람들도 허다하게 일어나는 지뢰 사고에 이번에도 터졌구나 했다더라고요.”

권씨의 사고 소식은 머지않아 그의 모친에게도 전해졌다.

“마을 사람들이 딸이 죽었다고 했다나 봐요. 어머니는 미군 부대를 전전하며 저를 찾아다니셨대요. 마침내 한 병상에 두 손을 잃은 채 누워있는 저를 찾으셨고, 장애인이 된 저를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 그러시더라고요.”

권씨에게 어머니는 각별했다. 퇴원 후 그의 어머니는 손이 없는 딸의 두 손이 돼 주며 대가 없는 사랑으로 상심에 찬 딸을 품어주었다. 덕분에 보다 빠르게 몸을 회복했고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지만 고통은 이때부터 찾아왔다.

“학교에 가선 손이 없는 저를 보고 친구들은 놀려댔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 어머니한테 말했더니 어머니는 덜컥 화를 내시며 이보다 더한 일이 찾아올 텐데 나약한 마음을 먹지 말라며 다독이셨죠. 하루는 눈깔사탕 한 봉지 가득 사 가지고 학교를 찾아오셔서는 친구들 앞에 선전포고하셨죠. '너희들 금자 놀리지 마라' '놀리지 않으면 사탕 더 가져다주마' '산이고 개울이고 항상 조심해라' '수상한 물건 보이면 어른들한테 말하거라' 하시면서요.”

이토록 애틋했던 어머니는 권씨가 23살 때 곁을 떠났다.

“저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을 살아갈 희망조차 사라졌죠. 저 역시 어머니 곁을 따라가겠노라 나쁜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순간 나는 죽는 복도 없나 보다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이후 70년 가까이 흘렀어도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이면, 살을 에는 고통이 찾아온다는 권씨. 권씨는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손이 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누군가 묻더라고요. 언제로 가장 돌아가고 싶냐고. 저는요 손이 있던 그 시절이 아니고는 가고 싶은 시절이 없어요.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제가 손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남을 위해 살고 싶어요. 연탄도 날라주고 손수 반찬도 만들어 지역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눠주고 싶어요. 나랏일 하시는 분들 제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저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지뢰 제거, 불발탄 제거에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