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인천에서 닭이 울면 중국 산둥성에서 들렸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전해온다. 아마 인천에선 서해 끄트머리인 백령도를, 산둥성에선 동쪽 끝 칭다오(靑島)를 일컫는 말일 터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산둥성은 정말 가까워 멀리 삼국시대부터 활발하게 교류를 해왔다는 기록들을 남긴다. 신라 때 장보고의 경우 중국 내 해상 근거지를 산둥성으로 삼아 활약했다. 지금도 산둥성 스다오(石島)에선 그를 기리는 절과 기념관 등 여러 '장보고 흔적'을 찾아보게 된다.

실제로 인천 개항(1883년) 후 항만 노동이나 각종 상업 등과 관련해 인천에서 터를 잡은 중국인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요리만 해도 그렇다. 산둥성이 고향인 이들이 해먹던 음식을 한국에서 내놓은 게 점차 인기를 얻으며 대중화했다. 인천에서 탄생한 짜장면도 마찬가지다. 산둥성에서 국수를 춘장에 비벼서 먹던 음식이 한국에서 풍미를 달리해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인천엔 전국 명물인 차이나타운도 형성돼 있고, 중국요리집도 아주 많다.

인천에서 1990년 9월15일 한국전쟁 발발 40년 후 한-중 카페리(골든브릿지호)가 첫 취항길에 오른 일도 인천-산둥성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날 배는 오후 4시 인천항을 출발해 산둥성 웨이하이(威海)항을 향해 떠났다. 주 2항차 운항으로, 한 항차에 승객 500명과 컨테이너 130개를 실었다. 골든브릿지호 취항으로 2년 후 한-중 수교를 순조롭게 했고, 한-중 무역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산둥성의 성도(省都)는 지난(濟南)으로, '노(魯)'라고도 부른다. 노는 공자가 태어나 활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산둥성 지역은 평야로 이뤄져, 전 면적의 60%를 경지로 이용한다. 사탕수수·옥수수··면화·땅콩·담배·포도 등의 경제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해안 지방엔 어장도 많아 높은 어획고를 자랑한다. 최근엔 칭다오를 중심으로 면직·식품·화학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산둥성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화교 역시 대개 산둥성 출신으로, 그 교세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인천시가 산둥성과의 교류를 더욱 촉진하기로 결정해 주목된다. 시는 얼마 전 산둥성 지방정부와 우호협력 연석회의를 온라인으로 열고, 무역·관광·문화·한중FTA 분야의 주요 정책 공유와 함께 교류 활성화를 제안했다. 2014년 11월 인천시-산둥성 간 공동협력강화 비망록을 체결한 후 네 번 째 회의다. 돌아가면서 열기로 정례화한 후 이번엔 인천시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온라인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산둥성과의 협력사업이 주춤한 상태다. 그래도 오랜 친구 사이인 만큼, 다시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두 정부에 '상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인천시와 산둥성이 평화롭고 발전적인 관계로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