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남쪽 지방 곳곳에서 큰 홍수가 잇따랐다. 그 물난리 와중에서도 소들의 늠름한 대처가 연일 뉴스를 탔다. 전남 구례에서는 홍수를 피해 소들이 떼를 지어 해발 531m의 산 속 암자로 피난하기도 했다. 10여 마리의 소들이 대웅전 앞마당에서 풀을 뜯거나 쉬고 있는 장면에 '과연 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는 이들 소가 걸었을 피난 행로를 뒤쫓아 보기도 했다. 사람이 걸어서 1시간 거리나 되고, 또 곳곳에서 길이 갈라지는데도 왜 하필 절을 찾아갔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역시 구례에서 축사 지붕으로 피신했다가 구출된 소들도 스타가 됐다. 온통 물바다가 된 동네를 떠다니다 높이 6m쯤의 축사 지붕에 올라탄 덕분에 생명을 건진 것이다. 당시 가장 회자된 말이 우생마사(牛生馬死)였다. 말이 홍수를 만나면 필사적으로 네 발을 허우적거리다가 물에 휩쓸려 버린다. 그러나 소는 물난리 속에서도 허우적거리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보릿고개를 넘어 본 장년층 이상이면 '소먹이기'를 안다. 소가 덜 바쁜 한여름이면 산으로 몰고 가 해질녘까지 풀을 뜯게 하는 일이다. 자기 소가 없는 집 아이들은 이웃집 소를 먹여주고 저녁 한끼를 해결한다. 요즘 말로 바꾸면 '소먹이기 알바'다. 산에 소를 풀어놓고는 친구들과 놀이에 정신 팔다가 소를 못찾기도 한다. 그러면 저녁 한끼는 커녕, 횃불을 들고 밤새도록 소를 찾아 다녀야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소먹이기가 힘든데 괭이질은 어찌할까'다. 이렇듯 우리에게 소는 그 이름부터가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는 가축이다. 오랜 농경민족의 유전자 어딘가에도 새겨져 있을 듯 하다. 유순하지만 듬직하고, 그 얼굴만 마주해도 나쁜 생각이 달아날 정도다. 그래서 소가 팔려가는 날이면, 그 소를 먹이러 다녔던 아이들이 때묻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 아이들이 향리를 떠나 도시로 유학(遊學)을 갈 때도 소가 학비를 대주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우골탑(牛骨塔)의 전설이다.

▶올해는 소띠 해 중에서도 흰 소띠의 해라고 한다. 흰 소가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니 더욱 반갑다. 벌써 경박스런 TV 자막 등에서는 아무데나 '∼소'로 문장을 맺는다. 그래도 이전의 '∼닭'이나 '∼개'보다는 정겹다. 지난 연말엔 구례 축사지붕 위의 그 소가 낳았다는 '소망이' '희망이' 쌍둥이 송아지들이 화제가 됐다. 코로나 역병 환란을 넘으려면 물난리 속에서도 의연했던 그 소를 배워야 할 것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지 않는가. 다만 '낯짝이 소가죽보다 두껍다'거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경계하면서.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