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건축물, 우리가 70년간 재창조한 주거문화

국가등록문화재 제도 시행 20년…건축물 보존 중요성 처음에 몰랐다면
요샌 지자체장 의지 등 따라 안하는 측면 커 … 전문인력 없는 것도 한계

시민들 개인재산 문화재 추진 시 찬성보다 '재산권 침해'라는 인식 강해
수리비지원 등 인센티브 홍보 통해 시민이 보존할 수 있도록 유도 필요

근대건축물 상당수 1930~1940년대 일본인 축조로 부정적 시선 많지만
우리 방식으로 구조 변형시켜 살아오면서 역사적 의미·가치가 더 높아
일본식으로 무조건적 복원 아닌 시민과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을
▲ 배성수(오른쪽)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과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2일 특별 대담에 앞서 중구 관동1가 팟알 카페(구 대화조 사무소, 등록문화재 제567호)에 잠시 들러 대화하고 있다. 이번 대담은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지침을 준수해 개항장 거리에서 진행됐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근대 문물이 파도를 타고 밀려든 인천은 100여년 전 이미 '국제도시'였다. 그중에서도 건축물은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일제강점기와 개발시대를 지나 근대건축물은 살아남는 데 급급한 처지가 됐다. '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기획을 마무리하며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와 근대건축물 보존과 활용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대담은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지침을 준수해 지난 2일 중구 개항장 거리에서 진행됐다.

<strong>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br>​​​​​​​</strong>인하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하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인천고적조사보고>, <시간을 담은 길-경인가도 따라 인천을 걷다> 등이 있다. 조선시대 강화도 관방 체제를 연구해왔으나, 최근에는 근대도시 인천의 변화 과정과 공간의 확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인하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하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인천고적조사보고>, <시간을 담은 길-경인가도 따라 인천을 걷다> 등이 있다. 조선시대 강화도 관방 체제를 연구해왔으나, 최근에는 근대도시 인천의 변화 과정과 공간의 확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공저), <서울, 권력도시>(공역) 등의 책을 썼다. 인천을 비롯한 동아시아 도시 근대화 과정을 일상생활과 도시환경, 건축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공저), <서울, 권력도시>(공역) 등의 책을 썼다. 인천을 비롯한 동아시아 도시 근대화 과정을 일상생활과 도시환경, 건축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기획 취재 과정에서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가운데 46개가 철거된 걸 확인했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였다. 보존을 안 한 걸까, 못 한 걸까.

배성수 부장(이하 배)=의지의 문제인데, 사실 무지의 결과였다. 근대건축물 중요성을 인식한 것도 이제 20년 정도 됐다. 그 전에는 개항 등 역사적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고, 공간은 부차적으로 여겼다. 분기점은 2011년이었다. 수인선 공사 과정에서 세관창고 철거 논란이 불거지자 관계기관 협의 끝에 이전 복원됐다. 그해 중구는 철거 후 방치됐던 대불호텔 부지의 건축 허가 과정에서 유구가 나오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린다는 조건을 걸었다. 결국 하부 유구가 나왔고, 개항장에서 유일하게 발굴조사가 벌어졌다. 물론 바로 이듬해 조일양조장이 공영주차장 조성으로 철거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연경 교수(이하 이)=국가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지 20년밖에 안 됐다. 도입 초기에는 공공기관 소유 건축물이 우선적으로 등록됐다. 점차 제도가 정착되며 신청 사례가 늘었다. 처음에는 몰라서 보존하지 못했다면, 최근에는 안 하는 측면도 크다. 이는 지자체장 의지, 지역 분위기와 연관된다.

=행정 연속성 문제도 있다. 근대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공무원이 국장·과장 자리에 앉으면 정책 변화가 생기지만, 1~2년 만에 사람이 바뀌기 일쑤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자체에 문화재를 담당하는 학예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문화유산 실무를 맡는 전문인력이 없다.

 

▲인천에서 개인 소유의 등록문화재는 '팟알' 카페로 활용되는 '구 대화조 사무소(등록문화재 제567호)'가 유일하다. 보존 문제는 재산권과도 연결된다.

=일반 시민은 개인 재산이 문화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재산권을 침해당한다는 관점 때문이다. 문화재가 되더라도 더욱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근대건축물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면 간단히 풀릴 수도 있는 문제다. 등록문화재가 돼서 수리비 지원을 받고,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집값까지 오른다면 부수겠나. 물론 단시일 내에는 힘들다.

=중소도시는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등록문화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물론 여전히 성장 중인, 지가가 높은 대도시인 인천은 상황이 다르다. 근대건축물 보존·활용 측면에서 빠지기 쉬운 오류 중 하나가 관 또는 시민 등 특정 주체가 주도하는 방식이다. 100% 시민 주도는 쉽지 않다. 관 역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민이 보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철거를 막는 제한만큼이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센티브도 중요하다. 개인이 근대건축물을 보존·활용하려고 해도 제도적 지원 절차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제도에 대한 홍보·교육도 필요하다.

=제도적 정비는 '투 트랙'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쪽에서 제한을 걸면, 다른 한쪽에선 소유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제한만 가하면 기습 철거하는 사례가 생긴다. 인천 특성에 맞는 조례가 필요하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조사도, 보존·활용도 동력을 얻기 어렵다. 서울에는 역사도심 계획 자체가 따로 있다. 철거를 완전히 막지는 못해도 제동을 걸 수는 있다. 인천은 역사적 가치를 품은 근대건축물이 많은 도시다. 어느 한 지역부터라도 성공 사례를 보여주면 된다. 당장 동구·부평구만 해도 대규모 개발로 근대건축물 철거가 예고돼 있다. 부평구 산곡동 영단주택도 공동주택 단지 안에 일부만 남겨서 공용시설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근대건축물 상당수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이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많고, 관광상품으로 오용하는 지자체도 있다.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은 1930~1940년대 지어진 게 대부분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10년 안팎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70년 넘게 사용된 것이다.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라고 해도 일제강점기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문화유산은 원형이 만들어진 시점뿐 아니라 그 이후 시간이 쌓이면서 담기는 의미도 크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함께하며 오랜 시간의 켜를 가진 것이다. 역사 교육적 측면에서 보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부정적 시선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생활문화의 흐름을 짚을 필요가 있다. 일식가옥에 한국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 방식으로 구조를 변형해서 썼다. 수십 년의 삶이 담겨 있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물론 일본식으로만 무조건적으로 원형 복원하는 건 반대한다.

=맞다. 인천시가 매입한 신흥동 시장관사도 1970년대 내부 구조가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주거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흔적인데, 복원을 이유로 뜯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지역에선 근대역사문화거리 기모노 체험을 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근대건축물 보존과 활용이 그 시대로의 복원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근대건축물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사례가 많다. 개항장·산업유산 등을 품은 인천이 지역 특성을 반영해 근대건축물을 살려 나갈 방법은.

=근대건축물 활용 방식을 보면 카페와 박물관이 대부분이다. 다양화가 필요하다. 근대건축물을 주민이 필요로하는 시설로 쓰는 차원으로 넘어가야 한다. 첨언하자면 근대건축물 시기를 일제강점기 정도까지만 보는 시각이 많은데, 더 늦기 전에 1960~1970년대 건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1970년대 토지 구획이 정리됐던 부평구 십정동도 개발로 다 쓸려나갔다. 몇 년 더 지나면 그 시절 건축물·공간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될 거다. '그때 왜 없앴을까' 하는 아쉬움을 후대에 주지 말아야 한다. 10여년 전 수인선 소래역을 철거하면서 철로를 걷어냈다. 그 이후 보도블록이 철로 모양으로 깔렸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신흥동 신광초등학교 옆에도 벽돌창고들이 남아 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될 만한 곳이다. 내항 일대 철도도 그렇고, 인천에는 역사를 지닌 흥미로운 공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앞서 서울 사례를 언급했는데, 일부에서는 서울이니까 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인천이 못 하면 어디가 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근대건축물을 재창조할 수 있는 도시는 인천밖에 없다. 그만큼 여력이 있다. 인천에 공공건축가 제도가 생겼으니까 이를 건축물과 공간환경에 조정·자문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서울뿐 아니라 경북 영주시도 근대건축물 활용과 도시재생에 공공건축가 제도를 접목하고 있다. 주차장과 같은 주민 필요 시설도 근대건축물과 공존할 수 있다. 근대건축물을 박제시켜 보존만 하지 말고 진정성 있는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진행·정리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