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프랑스에서는 법무장관을 옥쇄보관인(GARDE DES SCEAUX)이라고 부른다. 국가의 중요한 인장들을 보관하는 최종책임자라는 뜻으로, 현재 에릭 듀퐁모레티가 장관을 맡고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국가의 최고 가치로 받드는 프랑스에서 검찰과 대법원이 법무장관 소관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검사와 법관의 독립성에 장관의 개입은 원천봉쇄되어 있다.

영국의 사법제도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중요한 법률용어의 어원도 프랑스어와 동일하거나 파생되었다. 정의(JUSTICE) 법관(JUDGE) 법원(COURT) 등 영어단어는 모두 프랑스어와 스펠링까지 동일하다. 영국에서는 법무장관을 로드•첸슬러(LORD CHANCELLOR)라고 부르며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을 휘하에 두고있다. 미국은 법무장관을 검찰총장(ATTORNEY GENERAL)이라고 부르며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한다.

미국의 대법원장은 법무장관보다 상위에 있어서 대통령과 대등한 지위로 인정받는다. 대법관의 임기도 종신으로 돼있어 각기 독립적인 수십여개의 주를 통솔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견제해 삼권분립이 작동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은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분리하여 장관과 총장과의 관계가 애매한 상황에서 건국 7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2003년 3월 '노무현대통령 평검사들과의 대화'는 검찰개혁을 전제로 한 검찰인사 직후 헌정사상 최초로 평검사들과 대통령의 대화였다. 17년 전의 영상을 다시 보니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앞에서 평검사들의 주장은 형사재판정에서 검사들의 준엄한 논거를 방불케 했다. 대담 막바지에 한 평검사가 “대통령께서는 부산동부지청장에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으시지요”라는 질책성 문의에 노무현대통령은 “이쯤되면 막하자는 거지요”라고 대답하면서 대화는 끝장으로 치달았다. 그 자리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현 대통령도 배석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9년 4월 퇴임 후 고향땅으로 간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서울 서초동 대검 중앙수사부에 소환되어 박연차게이트 관련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사명감과 정의감도 이해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서로간의 입장을 존중해달라”던 전직 대통령은 당시 43세의 우병우 중수1과장 앞에서 10여시간의 조사를 받았고 그로부터 23일 후 사망(자살)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노무현의 동지 문재인은 하관 때 어금니를 굳게 깨물고 있었다. 평검사와의 대화부터 대검으로의 소환과정을 가까이 지켜본 인간 문재인을 누가 정치판으로 끌어들였으며, 대통령이 된 다음에 왜 검찰개혁과 공수처 신설에 그토록 집착하는가를 대한민국 검찰과 법조계를 아는 사람들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법치국가의 선두에서 자유•평등•박애를 국가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에서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10여년 근무하며 인접국인 영국, 독일, 베네룩스 같은 유럽 나라들과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사법기관, 특히 검찰의 역할과 위상을 보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보고 느낄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검찰청이 어디 있는지 검사는 어떤 수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일반 시민들도 검찰에 관한 대화나 정보욕구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연방검찰청 뉴욕 남부지청이 금융사고와 범죄가 빈발하는 월가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며 국제축구연맹(FIFA)과 스위스 대형은행들의 비리를 파헤쳐서 언론에 자주 등장할 뿐이다. 일본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1976년 당시 수상이던 다나카 가쿠에이를 체포하고 수상직에서 물러나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권력에 철퇴를 가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었고 개발독재시대를 정점으로 비리가 만연해서인지 검찰의 언론 노출이 지나치게 많고 잦은 편이다. 또한 언론계도 검언(檢言) 유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사의 실명이 나올 때는 사법연수원 기수까지 밝혀주면서 검찰조직의 위계질서에 영합하고 피의자의 혐의를 여과없이 보도하는 등 국민적 질책의 대상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의 꽃'이라고 칭하는 언론보도는 양식있는 국민들을 실소하게 만든다. 문재인정권이 시도하는 검찰개혁이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개혁해야 될 대표적 인물들에 의해서 집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국민을 설득 못하는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철칙을 문대통령이 다시 한번 인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