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의료원장

불과 일이십년 전만 해도 '공공보건의료'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던 용어였다. 외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개념이어서 적절한 표기도 없는 말이다. 일본의 지배 아래 설계된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애초부터 사적의료 중심으로 출발했다. 국민건강보험 시행으로 달성한 값싸고 쉬워진 의료접근성은 거대의료자본 형성을 촉진하였고 영리적인 의료 관행이 정착하게 되었다.

공공은 비효율이라는 공식은 정부의 일관된 기조였으며, 국민들이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즐비하게 늘어선 병원이 건강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착각 속에 지내게 만들었다. 의료이용률과 고가장비보유율 세계 최고라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생명을 다루는 필수분야는 뒷전으로 밀리고, 과중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으로 자살률이 줄지를 않는다. 수가가 낮아 유지조차 어렵다는 대형병원들은 저마다 규모 키우기에 바쁘다. 공공병원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선진국 평균의 60%에 불과한 의사 수를 조금 늘리자는 것도 절대 반대한다. 국민 총의료비의 가파른 상승은 보건의료재정 파산을 경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공성을 상실한 보건의료제도에서 비롯한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꿈꾸었던 공공의료 발전계획이 15년이 지나서야 '공공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으로 부활했다. 공공적이지 못한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계획을 담았다. 그 핵심의 하나가 '책임의료기관' 도입이다.

전국 17개 권역마다 상급병원(주로 국립대학병원)으로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70군데 중진료권마다 '지역책임의료기관'을 두어 권역-지역 간 긴밀한 연계를 통해 해당 지역의 필수•중증의료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중심역할을 하도록 했다. 인천광역시에는 1개의 권역책임의료기관과 4곳의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야 한다.

지역책임의료기관은 지역 주민에게 응급•심뇌•외상 등 시간을 다투는 필수의료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병원이어야 한다. 인천 같은 대도시의 경우 500병상 이상 규모와 첨단시설, 100명 이상의 전문의 등 충분한 인력을 갖출 것을 권고한다.

낮은 수준의 진료만 하던 작은 병원이 아니라 대형병원 수준의 규모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인천의료원이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보강할 것이 무척 많다.

첫째, 인천의료원의 규모와 인력을 늘려야 한다. 지금의 부족한 시설과 인력으로는 지역책임의료기관의 역할 수행이 불가능하다. 향후 계획된 지역응급센터 설치와 심뇌혈관센터사업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수도권 서부 권역감염병전문병원을 유치하는 것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둘째, 좋은 인재가 모이고 키워내는 병원을 위한 노력이다. 낙후된 공공병원의 이미지를 높이고 활기찬 조직을 만드는 데 경직적 운영구조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충분한 병원 규모와 책임감 있는 인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병원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급성기 진료의 거점병원으로서 좋은 위치에 충분한 시설을 갖춘 제2의료원을 확보해야 한다. 감염, 정신, 재활 등 비급성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최적의 위치에 있는 현 인천의료원과 역할을 분담하면 다양한 상승효과를 통해 시민을 위해 훨씬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코로나의 재유행이 심각하다. 인구집단에 충분한 면역이 생길 때까지 유행은 계속될 것이고, 이후에도 신종감염병은 우리를 계속 위협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사회의 성패는 공공의 강화와 비대면문화의 정착에 달려있다고 한다. 의료는 비대면으로 행해지기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4차 산업에 결합한 비대면 원격의료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지만 영리적인 의료체제에서 의료비 급증은 불 보듯 하다.

공공성이 전제된 체계로 빠른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공공의료 강화에 쓰는 돈은 비용이 아닌 양질의 투자인 근거이기도 하다. 살기 좋은 인천, 시민이 건강한 인천, 경쟁력 있는 복지인천은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가 그 출발이며 지역책임의료기관 인천의료원의 위상 강화가 그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