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창 인천서구의회 의원

인천 연안의 섬들은 본토와 얼마나 다른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도 개발이 한창인 섬들과 다르게 고립되다시피 한 최전방지역의 섬들이라면.

서구의회 연구단체 '우리민족 뿌리문화 바로알기'는 수십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섬 고유의 문화와 그 유산 관리에 대해 줄곧 '다름'에 대한 탐구열의를 가져 왔다.

드디어 올해가 얼마 안남은 때에 백령도와 대청도를 향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해병대원들과 함께 배에 오르니 민간인 5000여명, 군인 5000여 명으로 이루어졌다는 백령도의 특수한 거주민 비율이 실감되었다.

백령도는 독도 다음으로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으로 황해도 장연군과 17㎞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 땅이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엄연히 38도 선 아래에 있는 우리 땅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네 문화와 연결고리가 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읽었던 심청전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었다. 심청각에 서서 섬과 북한 장산곶 사이의 바다 일대인 인당수를 바라보는 것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같은 기분마저 주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 문화의 한 편을 차지하는 백령도지만, 나름 지리적 위치로 인해 고립된 토착사상이 굳게 뿌리를 내려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도서지역과 달리 토속신앙은 없었다. 그것은 95%나 되는 천주교와 개신교 비율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초반 조선의 두 번째 천주교 탄압이었던 기해박해와 함께 선교사들의 입국동선인 육로가 막히게 되자 서해로 방향을 돌린 것과 관계가 깊다. 이때 선교사들의 천혜의 위장지가 바로 백령도였다.

자연유산은 황홀하면서도 장엄했다.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두무진(頭武津)은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6·25전쟁 때 군사비행장으로 사용했다는 사곶해변은 압권이었다. 경치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천연비행장이란 희귀함의 가치가 더욱 멋들어지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큰 슬픔으로 남아있는 46용사를 기리는 천안함 위령탑에 도착했다. 조국수호를 위해 헌신한 대한의 아들들을 기리며 평화 아래에 자리잡은 위태로움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백령도는 여타 지방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탐방을 마치면서 우리 서구의 유산관리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잔잔한 느낌으로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정도 범위안에서는 보다 활기차고 때론 상업적인 색채가 가미되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문화유산은 보존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때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문화유산 관리에도 기념시설물 위주의 정적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테마공원의 느낌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은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