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진 지혜공유학교 꿈터장

수면은 가장 값진 보약으로 감정에 난 상처를 치유하고, 학습과 기억을 돕고, 면역력을 높여 질병과 감염을 예방한다. 수면은 각성 상태에서 얻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고 필요한 것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수면이 학습인 이유이다.

수면은 비렘수면(깊은 잠)과 렘수면(얕은 잠)이 90분 간격으로 반복되는데, 새벽으로 갈수록 렘수면 시간이 증가한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비렘수면은 호흡과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근육 활동은 거의 정지 상태로, 뇌파가 매우 느린 파형을 보여 이를 '서파수면'이라 부른다.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초기 90분간의 비렘수면이다. 반면, 렘수면은 뇌가 활성화되어 꿈을 꾸는 시간이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7~8개의 꿈을 꾸게 되는데, 이 중에서 기억하는 것은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 꾸는 꿈이다.

수면은 뇌세포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역할도 한다. 각성 상태에서 만들어진 유해한 화학물질 및 독소 청소가 수면 중에 일어난다. 우리가 24시간 잠을 자지 않을 경우, 혈중알코올농도가 0.1%인 상태와 같으며 이는 법적으로 취한 상태이다. 즉 수면의 양과 질은 낮 동안의 각성 수준을 결정한다.

수면을 위해서는 수면 초기의 90분 동안은 방해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 SNS의 증가는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수면시간에는 SNS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수면 시간에 휴대폰 사용은 수면의 질과 양을 떨어뜨려 학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실에 휴대폰 거치대를 설치하여 침대와 휴대폰을 분리하는 것이 수면과 학습에 도움이 된다.

2012년 영국 랭커스터대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기억과 인지>에 '문제 해결에서의 수면의 효과'라는 논문에서 평균 나이 20.5세의 남녀 61명에게 30문제를 풀도록 하고, 실험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구분했다. 1그룹은 쉬는 시간 없이 시험을 연속으로 두 번, 2그룹은 아침 9시에 첫 번째 시험을 보고 12시간 지난 밤 9시에 두 번째 시험을 치렀다. 3그룹은 밤 9시에 첫 번째 시험을 치고 잠을 잔 뒤 다음날 아침 9시에 시험을 치렀다. 성적은 가장 높은 그룹은 잠을 자고 난 다음에 시험을 치른 3그룹이었다. 수면과 학습의 관계를 나타낸 실험 결과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CEO 하사비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잠을 비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습과 기억력 차원에서 잠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크립키 교수가 100만여 명의 남녀 성인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과 6년간의 사망률을 추적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7시간 잠을 잔 경우가 사망률이 가장 낮고, 7시간보다 적게 잘 때와 많이 잘 때도 사망률이 증가했다. 적정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면 수면도 빚(부채)이 되어 쌓인다. 수면은 우리 신체를 조정하는 왕으로 부족하면 수면 빚을 강요한다. 언젠가 고속도로 터널 입구에 '천하장사 이만기도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없다'는 졸음운전 방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수면 빚은 졸음으로 나타나 교실에서 학습을 방해하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필자가 강원도에서 초임 교사 시절 학교의 모든 교실 전면 좌우에 韋編三絶(위편삼절)과 四當五落(4당5락)이라는 문구를 표구로 제작하여 학생들이 학습에 몰입하도록 독려했다. 위편삼절은 공자가 역경(易經)을 애독하여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독서에 힘씀을 이르는 말이다. 4당5락은 4시간 자고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의미로 가능한 잠을 줄여서 공부에 매진하라는 의미다.

위편삼절은 현재도 유효하지만 4당5락은 8시간 자면 합격하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8당4락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면 중에 낮에 학습한 내용을 복습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가 아직도 자녀교육에 4당5락을 신뢰하고 있다.

인간은 AI(인공지능)가 아니기 때문에 재충전을 위한 수면시간이 절실하다. 최적의 숙면이 최고의 학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