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민 정치부 기자

첫 만남은 지난 8월14일이었다. 회사에서 현장 취재를 시작하는 걸음을 뗀 직후, 새 옷을 차려 입은 중구 항동5가 '인천시 건축사회관'을 마주했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내면은 그대로였다. 지난해 보수를 마친 건축사회관은 1932년 건립됐을 당시 원형을 간직했다.

반가움도 잠시, 건축사회관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옛 인천우체국 앞에는 '구조 안전 위험 시설물' 알림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시 유형문화재 제8호인 우체국 건물은 중동우체국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서 비워진 상태였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기획 취재 첫날 둘러본 중구 항동·중앙동 일대는 비교적 근대건축물의 자취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수첩에 '철거'라고 표시한 건물은 22동 가운데 1동에 불과했다.

지난달부터 연재 중인 '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기획 기사는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에서 출발했다. 인천시가 2016년 군·구 실태조사를 거쳐 정리한 목록이다. 기획 취재 과정에서 지난 8월14일부터 10월17일까지 일부 섬 지역을 제외한 206개 현장을 조사했다.

두 번째 만남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인천시가 지난 2003년 지정한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인 중구 송학동에 발을 디디면서다. 지구단위계획에서 '보전 대상'으로 분류한 건축물 자리에는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100년의 시간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근대건축물이 사라진 곳에 솟아오른 현대식 건물은 과거보다 오늘을 체감하게 했다. 내동 골목에서 마주한 일제강점기 주택 담벼락에는 '피신, 붕괴 위험'이라는 글자가 쓰였다.

당혹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신흥동1가로 향했을 땐 목록 주소지에서 황량한 공터를 맞닥뜨리기도 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근대건축물이 모여 있던 마을 전체가 흙더미로 변한 곳이다. '개항장'을 앞세우는 인천에서도 개발 논리는 역사 정체성보다 가까웠다. 두 달여에 걸친 현장 조사를 마무리하며 210개 목록 가운데 46개 근대문화유산 앞에 '철거'라는 두 글자를 썼다.

근대건축물과의 인연은 짧았고 절연은 길었다. 잠깐의 마주침 뒤로 옛 모습을 간직한 근대건축물을 만날 때까지 한참의 기다림이 남았다. 존재는 초라했고 부재는 당연했다. 남겨진 것들은 예전 정취를 잃었고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근대와의 이별은 그렇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