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뒷간 관련 유물.

우리는 '밥 먹듯이' 화장실을 간다. 필수 공간임에도 '배설'이란 행위 때문에 오랫동안 멀리했다. 양변기를 설치하고 집 안으로 들인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정부는 흔히 '푸세식'이라 부르던 재래식 변소를 걷어내고 양변기 설치를 권했다. 노인들은 한사코 이를 거절했다. “며느리와 어떻게 한 요강에 앉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양변기를 새로운 형태의 요강으로 인식했다.

초등학교 시절 미혼의 삼촌, 고모들이 우리집에 함께 살았다. 여기에 자식이 세 명이나 있는 셋방까지 있었다. 한 집에 열서너 명이 모여 살았다. 아침마다 마당은 늘 전쟁터였다. 특히 변소는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싸움터였다. 세 살 터울인 형과 나는 거의 변소를 함께 사용해야만 했다. 널빤지 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서로 맞대고 볼일을 봤다. 앞이 좁다고 서로 엉덩이를 밀치기도 했다.

그나마 집에 변소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길 건너 동네에는 골목 입구에 목재로 만든 열 칸짜리 기다란 공동변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공동변소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과 자주 눈이 마주쳤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동네에 똥차가 나타나면 친구들과 그 뒤를 쫓았다. 돈을 줍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가끔 볼일 보다가 변기 안에 동전을 떨어트렸다. 실제로 똥차 흡입구에서 가끔 동전이 흘러나오곤 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똥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너무 많이 생각난다. 지면이 좁은 게 안타깝다.

어제부터(11월24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특별기획전 '뒷간, 화장실이 되다'가 열리고 있다. 매화틀, 요강, 똥장군, 해우소, 공동변소, 밑씻개, 채변봉투 등 화장실과 인분에 관한 모든 것이 전시 중이다. 똥 이야기를 질펀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