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구 위에 새겨질 인류의 위대한 발자국
▲ 영화 '그래비티' 중 지구에 무사히 착륙한 라이언이 생존의 기쁨에 젖은 장면.

“내가 기도할 수도 있지만, 해본 적이 없어서요.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아무도…”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 홀로 고립된 라이언 스톤 박사는 연료가 바닥나 멈춰버린 우주선 안에서 희망을 잃고 죽음만을 기다린다. 그녀는 구조 요청을 위해 교신을 시도하던 중 연결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지구인에게 혼잣말하듯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바랄 것은 신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2013)는 우주쓰레기가 된 인공위성 잔해로 인해 조난당하며 홀로 우주에 남겨진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지구 귀환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 우주재난 영화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경이로운 특수효과에 힘입은 압도적인 비주얼과 단순한 스토리 속에 내장한 묵직한 울림의 메시지를 선사하는 인류사에 남을 걸작을 탄생시키며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주적인 시선으로 조망하는 인류의 존재론적 의미

기온이 125도와 영하 100도를 오르내리고 소리도 산소도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지구 600㎞ 상공, 고요한 우주 속에서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들이 휴스턴 관제센터와 교신을 주고받는다.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내일이면 지구로 완전히 귀환하는 임무지휘관 코왈스키는 마지막 우주유영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들이 작업 중인 이들을 덮친다. 러시아가 자국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처리하던 중 그 잔해가 다른 인공위성들까지 폭발시키면서 거대한 파편의 무리로 변해 궤도를 따라 그들을 덮친 것이다. 이로 인해 우주선이 파괴되고 코왈스키와 라이언만 살아남는다. 결국 코왈스키는 라이언을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인도한 후 끝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우주의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부턴 어둡고 차가운 우주 속에 외로이 남은 라이언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감독은 우주에서 조난당한 여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우주론적 차원에서 지구를 조감하며 고갱이 그림을 통해 던진 화두를 다시 한 번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37억 년 전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후, 약 46억 년 전 태양계의 한 행성으로 태어난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건 38억 년 전이다. 최초의 세포 박테리아에서 출발한 생명은 진화를 거듭하며 결국 직립보행하는 인류를 탄생시켰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두 발로 땅을 딛고 곧추선 최초의 인류가 머리를 쳐들고 하늘 저편을 응시하며 꾸었던 꿈은 영화 속에서 악몽으로 변한다. 영화는 이제 인류의 시선을 지구 저편의 우주에서 다시 지구로 돌리게 한다. 생명체의 생존이 불가능한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미아로 떠돌던 라이언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죽음의 문 앞에서 코왈스키의 영혼과 재회한다. 그의 도움으로 신과 영혼에 대한 믿음과 함께 희망을 되찾은 라이언은 중국 우주선의 도움으로 지구를 향해 하강한다. 그리고 마침내 풀벌레 소리, 새소리 등 생명의 소리로 충만한 지구의 대지 위에 두 발로 우뚝 선다. 경이로운 지구의 중력의 힘에 감사하며…

그리곤 최초의 인류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코왈스키의 영혼이 남긴 메시지를 되뇐다.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