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가덕도는 부산 강서구의 한 섬이다. 전형적인 남해의 섬마을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섬 북쪽에 부산신항이 개발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0년 개통된 부산~거제도간 해상교량 거가대교(8.2㎞)가 지나가면서 더 알려졌다.

▶이 섬에 116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 있다. 외양포 마을이다. 가덕도 남쪽 끝단의 조용한 갯마을이지만 다가가 보면 옛 일본군 요새 모습이다.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뒤 일본해군은 대한해협의 군사적 거점 마련을 위해 이 마을 주민들을 쫓아냈다. 일본해군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격전에 대비, 포대사령부를 짓기 위해서였다. 양천 허씨 집성촌의 마을 주민들은 반발했지만 총칼 앞에서는 무력했다. 왜 가덕도였는가. 이 섬이 천혜의 해군기지 지형을 갖춘 진해만에서 대한해협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어서다. 곧 바로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들어섰다. 마을 뒷산에는 요새 사령부 포 진지도 남아있다. 대나무 숲과 갈대 등으로 가려져 있는 '은폐 요새'다. 진지 입구에는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 빗돌도 세워져 있다. 일본군이 쓰던 우물터도 그대로다. 일본이 패망하고 주민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 마을은 다시 우리 해군의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돼 지금껏 개발이 멈춰졌다. 그래서 주민들은 사령부 병영이나 헌병대 막사, 무기창고, 장교사택, 사병내무반 등을 개조해 살고 있는 것이다. 헌병대 막사 집에는 지하 감옥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116년 전 진해만과 대한해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전쟁 초반 태평양 함대가 괴멸되자 러시아는 발틱함대까지 동원했다. 총 37척의 이 대함대는 1904년 10월 러시아 크론슈타트항을 출항한다. 바리야크함 깃발의 인연으로 인천광장이 조성돼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다. 8개월에 걸쳐 북해-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건너고 또 건너느라 초주검이 된 함대로 전락했다. 진해만에서 오직 포격훈련에만 전념했던 일본 해군은 개전 한 나절만에 발틱함대 대부분을 동해바다에 가라앉혔다. 그 결과는 곧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강점으로 이어진다.

▶힘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교훈을 안고 있는 가덕도가 다시 시끄럽다.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저 남녘지방의 염원은 이해가 간다. 해외여행 한번 하려 인천공항 근처에서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다니까. 그런데 부산 대구 울산 경남 경북이 서로 자기 쪽에 공항을 지으려다 20년 제자리 걸음을 했다. 큰 선거가 닥치자 가덕도가 되살아나 뜨거워지고 있다. 누군가는 '가덕도 노무현 국제공항'라는 공항 이름부터 내놓았다. 다시 누군가가 되받았다. '오거돈 공항'이 더 낫다고. 이런 가당찮은 싸움질에 날이 새고 지다가는 다시 가덕도에 요새사령부가 들어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