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인천시·문화예술교육센터
음악극 '부평 마을이야기 …' 공연
▲ '부평 마을이야기, 조병창의 평화를 노래하다' 출연진들이 '평화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부평 참 많이 변했네...”

100세를 바라보는 노구의 할머니는 시끌벅적한 부평 시장과 상인들, 그 틈바구니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80년 전 소녀 시절을 회고한다. 손자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스르르 잠에 빠져 15살 어린 소녀 때로 되돌아간다.

21일 오후 부평구 갈산2동 ‘부평문화사랑방’에서 강은영 지휘자의 지휘로 막을 올린 음악극 ‘부평 마을이야기, 조병창의 평화를 노래하다’는 일제 강점기 때 부평 조병창으로 끌려온 15살 앳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조병창에 발을 들여놓는다. 소녀는 모진 고초를 겪으며 고사리손으로 밤낮없이 일제의 침략 무기를 만드는데 내몰렸다.

노역에 지친 사람들은 소녀 곁에 모여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빠는 지금 어디 있을까?” 또래의 한 소녀는 조병창에 같이 끌려온 뒤 행방을 알 길 없는 오빠가 생각난다며 눈물짓는다.

한 소년이 “조병창을 탈출하자”고 나선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니 조금만 버텨보자고 만류하는 손길이 잡아 끈다. 탈출을 포기한 사람들은 자유와 고향, 조국의 독립을 생각하며 ‘동포가’와 ‘대한민국 독립군가’를 부른다. 기나긴 어둠 끝에 마침내 기적 같은 해방이 찾아오고,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목청껏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다.

▲조국의 광복 소식을 접한 조병창 노동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조국의 광복 소식을 접한 조병창 노동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노랫소리에 잠에서 깬 할머니는 어린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전쟁과 억압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하며 관람객의 박수와 환호 속에 무대의 막을 내린다. “평화를 원해, 전쟁은 이제 그만, 다시는 전쟁 없길 바래...”

이 공연에는 강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사연합회 인천지회 대표의 총괄기획 아래 ‘지역아동센터부평공부방’, ‘한사랑지역아동센터’ 학생 14명과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지역 상인, 노동자, 아마추어 성악가 등 23명이 출연했다.

무대 중간에는 학생들이 부평깡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인터뷰하고 물건도 사면서 느낀 점들을 노래로 만든 ‘깡시장 주제곡’이 선보였다.

몇 년간 아이들을 위해 빵과 음료수를 후원해 준 한국지엠 노동조합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철판을 잘라 색칠해요”는 도장부에서 일하는 삼촌들, “삼촌 공장이 없어지면 안 돼요 안돼!”는 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된 사연을 듣고 부평공부방 친구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부평깡시장 상인회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인천비정규노동센터,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부평구 동아리 ‘기타 등등’ 회원들이 힘을 보탰다.

음악극의 배경이 된 부평 조병창은 1939년 일제가 세운 남한 최대규모의 군수공장으로, 패망 전까지 전쟁물자를 생산한 곳이다. 일제는 인천뿐 아니라 서울, 경기도 지역의 중·고교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임금을 지급하고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유혹해 ‘임금’은 지급하지 않고 강제노역에 내몰았다.

광복을 맞은 이후에는 미군이 ‘캠프 마켓’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곳을 차지했다. 이후 지난 10월 14일 시민들에게 개방되기까지 무려 81년간 ‘금단의 땅’으로 남아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일부 장소는 미군이 “빵 공장을 운영한다”는 핑계로 높다란 담벼락으로 둘러싼 채 시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땅속에서는 다이옥신을 비롯한 다량의 중금속과 자동차 오일이 검출돼 오는 22년까지 정화작업을 벌여야 한다. 부평 조병창 터는 이처럼 일제 강점과 미군 주둔의 역사가 겹친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무대 기획과 지휘를 맡은 강 대표는 역사의 아픔을 단순히 상처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갈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부평깡시장에서 삶을 영위하는 상인과 지역주민, 미래를 펼쳐나갈 어린이들과 함께, 다시는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평화로운 땅’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고 강조한다.

강 대표는 “예술에 대한 기준은 누가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지역문화 예술교육을 통해 어린 학생들이 문화예술교육의 수혜자이자 주체적인 문화수용자, 문화생산자로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찬흥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

▲'조병창의 평화를 노래하다' 출연진들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병창의 평화를 노래하다' 출연진들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