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왕 변성대왕이 골목 깊이 들어앉았다
▲ 송암미술관이 소장한 시왕도는 ‘제6 변성대왕도’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67호로 지정돼 있다. 변성대왕은 망자가 죽은 지 42일째 되는 날 만나게 되는 왕으로, 여죄가 남은 사람을 도산(刀山)지옥에 보내는 일을 한다. /사진제공=송암미술관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 위치한 송암미술관은 개인소장품 전시공간으로 시작했다.

기증자는 OCI그룹의 전신인 동양제철화학 창업주 송암(松巖) 이회림 회장이었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 개성상인'이라 불렸으며 고미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평생 수집한 그림과 도자기, 공예품 등과 미술관 건물을 인천시에 기증했고 2011년 인천시립송암미술관으로 문을 열어 지금은 인천시가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건립된 송암미술관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작품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를 비롯해 1만1139점에 이르는 유물이 수장돼 있다. 이 중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선별해 상설전시 및 특별전시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평양성도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다양한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 또한 송암미술관의 자랑이다. 매년 성인 대상의 한국미술사를 소개하는 송암예술아카데미와 학예사의 직업을 체험하는 진로체험교육, 초등학생을 상대로하는 전시 연계 체험교육, 가족체험 교육 등을 운영 중이다.

 


#다채로운 전시실

-1층 공예실

공예실에는 도자기, 불교조각, 민속자료가 전시돼 있다. 삼국시대 토기와 고려시대 청자, 조선시대 분청사기, 백자, 청화백자가 시대순으로 한국 도자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향완(香椀), 목조여래좌상(木造如來坐像), 목조보살좌상(木造菩薩坐像) 등을 통해 한국 불교 조각사의 면면도 관람 가능하다.

한편 남성들이 서재에서 사용했던 문방사우(文房四友)와 서안(書案), 여성들이 몸을 치장하는데 사용했던 각종 장신구와 경대 등 민속자료에서는 옛날 사람들의 생활상도 전시돼 있다.

-2층 서화실

서화실에는 조선 후기 부터 근대의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과 민화, 불화가 전시돼 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와 18세기에 그려진 평양성도(平壤城圖), 이도영의 산수도, 최우석의 기명절지도, 박승무의 화조도, 이한복의 매조도와 민화(民畵)인 모란도, 호랑이도, 책가도, 호피도, 연화도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불화인 시왕도를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우리 미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야외전시장

송암미술관은 야외전시장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야외전시장에는 석등과 부도, 문인석 등 석조 유물들과 광개토대왕릉비(복제)가 전시돼 있다. 야외 정원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미술관의 정취를 드높여 준다.

 

#대표 유물

-평양성도

보물 제1997호인 평양성도는 현존하는 평양성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18세기 후반 조선 후기 평양부(平壤府)의 모습을 그린 것이 평양성도로 기성도(箕城圖)라 불리기도 한다. 기성이란 기자조선의 터전이다. 이 그림에는 평양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8폭 병품의 장대한 화면에 섬세하게 평양성의 모습을 화려하게 재현했는데 상단에는 평양성 둘레의 산을 그리고 하단에는 대동강을 배치해 주요 지형과 경물에 각각의 명칭을 적어 놓았다. 부벽루, 기자묘, 능라도, 대동문, 애련문, 정전(井田)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왕도(제6변성대왕도)

시왕도(十王圖)는 명부에서 죽은 사람의 생전 죄업을 심판해 육도윤회를 결정하는 지옥의 왕 '열명'을 그린 불화다. 10폭이 한 세트를 이루며 사찰의 명부전이나 시왕전에 봉안된다. 열명의 시왕 중 여섯번째 왕이 변성대왕(變成大王)이다. 변성대왕은 망자가 죽은 지 42일째 만나는데 앞선 재판에서 심판을 받고도 남은 죄가 있으면 도산(刀山) 지옥으로 보내 벌을 추가로 받는다. 상단은 심판의 모습을, 하단은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려 넣고 있다. 화면의 우측 하단에 죄인이 날카로운 칼이 꽂힌 산으로 끌려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은 17세기 철현(哲玄)이라는 화원이 그렸다.

#코로나19 시대 온라인으로 만나는 박물관

코로나19 영향으로 몇 번의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한 송암미술관은 자체 비대면 체험 서비스를 개발해 박물관 방문이 어려운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자체 개발한 온라인 체험 교육 영상인 '스쿨러닝'은 초·중·고 학생들이 대상이다.

십이지신 체험 교육을 학교 각 학급에서 원격으로 영상을 통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미술관 학예사에 대해 진로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꿈을 그리는 미술관(작은 사진)'도 있다. 실제 오래된 유물 키트를 학교로 보내 수업시간에 유물 보존처리를 학생들이 직접 해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대상의 '열두 수호신이 간다' 역시 인기 과정이다. 교실에서 미술관의 십이지신 소장품 영상을 보며 나만의 십이지신 클레이 연필 만들기를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비와 발송비 모두 미술관이 부담한다.

 


“송암미술관은 인천의 유일한 공립 미술관입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김장성 송암미술관 관장
▲ 김장성 송암미술관 관장

지난 7월 부임한 김장성(사진) 송암미술관 관장은 한 번이라도 송암미술관을 다녀간 시민들은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인천에서 보기 드문 고미술을 전시해 둔데다가 야외전시장까지 볼 만한 전시로 채워 넣어 단체 관람과 개인 관람객이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송암미술관의 약점이 있다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추홀구 비류대로55번길 골목 사이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좋은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용현학익지구 도시개발 사업에 따라 인근이 정비되며 도로가 나고 대중교통 또한 접근이 쉬워질 예정이다.

“주민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방도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로 휴관 중일때 전시실도 일부 새단장을 거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또 일반인 대상 한국 미술사 아카데미도 수준 높은 강좌로 준비해 시민들에게 선보이겠습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사진제공=송암미술관·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동기획 인천일보·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