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고 덧칠한 게 창작? 도둑질엔 매가 약
▲ 竊(절)은 움집(穴)에 쌓아둔 곡식( )을 갉아먹는 쌀벌레(설)를 표현했다. /그림=소헌
▲ 竊(절)은 움집(穴)에 쌓아둔 곡식( )을 갉아먹는 쌀벌레(설)를 표현했다. /그림=소헌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이 완성되던 해(1476)에 벌어진 사건이다. 형조(형사소송을 맡은 관아)에서는 두 사내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 명은 알 만하다. 3품 내직을 지내던 관료였고, 한 명은 이번 과거에 급제한 그의 아들이라 한다. 재판의 요지는 이렇다. 아비는 아들의 시험을 위해 홍문관에 비치한 비밀문서를 필사筆寫하여 주었는데, 주무 감독관이 이를 알아챈 것이다. 아비는 감독관을 찾아가 뇌물로 회유하려 하였으나 거절하자 그를 독살했다.

꽤나 그럴듯한 영화 한 편 보는 것 같지 아니한가? 윗글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소재로 필자가 꾸며낸 이야기다. 꾸며냈다? 어찌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1970~1990년대에 걸쳐 몇 번이나 방영된 연속극 ‘형사 콜롬보’에서 따왔다. 첨단과학연구소장이 그의 아들에게 저명한 학자의 논문을 베껴 주고, 눈치 챈 친구를 살해한 것을 모방했으니까.

도적기립(盜賊起立) 도둑이 달릴까 했더니 우뚝 선다. 잘못한 놈이 달아날 생각을 않고 도리어 기세를 올려 나무라는 것을 비유하며, 도둑이 매를 든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남의 글이나 시문을 베껴 마치 자기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문필도적文筆盜賊이라 한다. 盜(도)는 남의 밥그릇(皿명)을 보고 침(_연)을 흘리는 것이고, 賊(적)은 남의 재물(貝패)을 무기(戎융)를 들어 빼앗는 글자다.

 

剽 표 [겁박하다 / 벗기다 / 빼앗다]

①_票(증표 표)는 _(덮을 아)와 示(보일 시)가 모여 제단(示)에 덮어놓는(_) 부적으로 쓴다. 신에게 바라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②겁박(劫迫)은 으르고 협박하다는 뜻이다. 중요한 문서(票표)를 칼(_도)로 위협하여(剽표) 빼앗는 것이다.

 

竊 절 [훔치다 / 도둑질하다]

(1)竊(절)을 깨뜨리면 穴(혈)과 _(변)과 __(설)로 나누어진다. ①穴(구멍 혈)은 지붕(_면)을 떠받치는 두 기둥(八)으로서 동굴을 본떴다. ②_(분별할 변)은 짐승의 발자국을 가리키는데, 竊(절)의 옛글자에서는 米(쌀 미)로 썼다. ③__(쌀벌레 설)은 벌레나 곤충을 아우른다. 卨(설)로도 쓰는데, 모양새가 탱크처럼 생겼다 하여 ‘탱크 탱’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④동굴(穴)같은 움집에 쌓아둔 곡식(米)을 분별하여(_) 갉아먹는 쌀벌레(__/卨)처럼 남의 물건을 훔치는 글자가 竊(절)이다. (2)널빤지에 칼로 새긴 글자인 契(글/계)는 한자가 우리글임을 증명한다. ‘이름’을 뜻하기도 하며 卨(이름 설)과도 바꾸어 쓴다.

대부분 종교에서는 도둑질을 중요한 계율로 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살(殺살인) 도(盜도둑질) 음(淫음탕함) 세 가지를 가장 무거운 죄로 다스린다. _글, 그림, 노래 등 남의 작품에서 일부나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것을 표절이라고 하는데, 아예 도작盜作이라고도 한다.

뽕짝가수로 이름을 날린 홍진영의 석·박사 논문을 표절거름체제(카피킬러 시스템)로 검사한 결과 74% 이상으로 확인되어 해당 학교는 그녀의 학위취소를 고려중이다. 가만히 보자. 50% 넘는 표절을 거른다 하니, 그동안 석사·박사라 하여 가문을 빛낸 수많은 이들이 얼마나 베낀 것일까? 붕어질(립싱크)하는 가수나 남의 그림에 덧칠한 것을 창작으로 인정하는 등 매우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자들에게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 참, 도루盜壘가 있는 야구는 가장 버르장머리 없는 경기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