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경기도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 단지들에서 잇따라 아파트 이름 변경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주변으로부터 '싸구려 아파트' 등의 비하시선에 시달려서다. LH라는 이름이 '저소득층 임대아파트'를 연상케 해서다. 아이들끼리는 LH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친 '휴거'라는 얘기도 떠돈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 이름에서 아예 'LH'를 지우려 나섰다는 것이다. 고양에서는 이미 지난 9월 입주민 동의 절차를 거쳐 'LH'를 떼버렸다. 수원과 파주에서도 입주민 투표가 추진되고 있다. LH는 주택을 계층화해 보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시선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의 이런 움직임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민간건설업체에 비해 LH가 품질관리를 너무 등한시 한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남의 한 LH단지에서는 설계 하자로 세탁실에 세탁기가 들어가지 않았다지 않는가.

▶부동산 시장이 혼돈할수록 아파트 이름에 예민해 지는가 보다. 최근 관리사무소로 부터 투표 용지가 전달됐다. 주변에 대규모 공원 조성이 추진되는 만큼 아파트 이름에 '파크 뷰'를 더 보태자는 투표다. 영어가 대부분인 아파트 이름이 12자로 더 길어지게 됐다. 갈수록 시어머니들이 아들 집을 찾아오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오산 등에서는 '가짜 동탄' 마케팅이 논란이 됐다. 화성 동탄신도시에 GTX 등 개발 호재가 겹치자 '동탄' 끼워 팔기가 인근 오산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건설업체와 주택조합 등이 분양과 조합원 모집 등에서 '남동탄' '서동탄' 등을 남발한 것이다. 그래서 '동탄이라고 알고 왔다면 오산(誤算, 烏山)입니다'라는 애기도 돌았다고 한다. '신동탄'이나 '서동탄역', '신동백'을 넣은 아파트 사업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3기 신도시 사업이 발표되자 경기 파주 등에서는 “우리 동네에도 '신도시 타이틀'을 붙여 달라”는 서명 운동이 전개됐다. 파주 교하지구 내 입주민들은 '교하' 대신 '운정'으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했다. '교하지구'라는 이름 때문에 여러 개발 호재에도 인근 '운정 신도시'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도 내용보다 이름이 앞서는 시대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청년 일자리 정책에는 뭔 말인지도 모를 'JOB GO'가 단골로 들어간다. 'Go-Together, 같이 가 잡(JOB)'이라는 긴 이름의 프로젝트도 있었다. 여성가족부는 시가 쪽은 '도련님' '아가씨', 처가쪽은 '처남' '처제'로 부르는 게 차별적이라며 손봐야 할 호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름에 비해 속은 텅 빈 사업임은 미리부터 안다. 이번 주 24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대책의 정식 명칭이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정책'이다. 유례없는 전세대란 시기에 이번에는 과연 이름값을 할 정책일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