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혜 문화부장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올해 79세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해 소송 등 갖가지 싸움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네 살 어린 75세다.

4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때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고령이 등장한 셈이다. 가히 노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노익장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몇 년 전 이 나라에 잠시 머물렀을 때 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하는 일을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맡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치아가 몽땅 빠져 입술이 곱송그린 할머니도 여유롭게 카트를 빼 내어주며 “굿모닝” 하고 웃었더랬다. 이런 광경이 하도 낯설어 물어보니 미국에선 본인만 가능하다면 나이를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문제를 덜 일으키고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해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온도차가 큰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80줄에 접어들 어르신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떨까.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 모든 측면에서 국정운영의 정상 추진을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다. 70세만 넘으면 운전면허 반납을 종용할 정도로 노인들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제는 공문 등에서 행정용어로도 널리 쓰이는 '어르신'이라는 표현에는 공경의 의미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활성과 비활성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 짓는 완곡한 배타의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주에 미추홀구 학산소극장에서 열린 시니어 연극 '황혼의 불꽃'의 원제는 '비키세요 어르신'이었다.

실제 나이가 70대인 6명의 배우는 극에서 노인을 향한 사회의 무시에 몸서리치고 자식들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 사실은 '비켜요 이 늙은이야'라고 말하는 대중의 속마음을 이들은 읽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극 속 노인들은 욕망과 경륜을 갖춘 주체적인 삶을 살려 노력했다.

풍부한 발성과 관록 있는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한 이날의 원로 배우들에게 세월이란 이제 곧 막이 오른 또 다른 연극무대처럼 보였다. 공연 뒤 분장을 닦아내던 한 배우는 “엄청난 대사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서 며칠 밤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의 문제를 노인의 입으로 말하고 노인이 해결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빈곤과 병고, 고독과 무위의 네 가지를 우리나라 노인들은 다른 나라 노인들보다 더 극심하게 겪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고령자들의 사회 참여를 은근히 배제한 채 마치 이들을 다른 차원에서 보살펴야 할 존재로만 여기는 정책은 노인들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인들 스스로의 자구 노력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연극에서도 노인의 활동반경을 자체적으로 넓혀 나가는 등장 인물들의 적극성이 핵심이었다.

무대 위 이들과 무대 밖 이들을 보며, 백세시대 우리나라의 노인 정책도 진일보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단순히 비주류로서 보호나 수혜의 대상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노인 생활의 안정과 건강한 노후 생활로 존경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노인상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자기 활동 능력이 비교적 가능하고 왕성한 시기는 78세 전후까지로 조사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고령사회를 넘어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의 역할이나 노인 문제에 대해 폭 넓은 접근이 요구된다. 79세 대통령 후보가 나와도 민망하거나 어리둥절해 하지 않을 나라는 이런 정책이 뿌리를 내린 다음에야 꿈꿔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