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이번주 월요일 언론계 남시욱 선배로부터 묵직한 저서 한 권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381쪽에 달하는 <한미동맹의 탄생비화>라는 제목의 책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을 집중 조명하면서 특히 휴전협정 체결 직전에 이승만 대통령과 월터 로버트슨 미국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 간의 긴박했던 12차례에 걸친 담판내용을 외교문서와 국내외 언론보도를 심층분석하면서 정리하고 있었다. ▶로버트슨 극동담당차관보는 1893년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에서 태어나 1944년 내전상태였던 중국에서 미국 대사관의 경제담당공사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내전을 현지에서 지켜보면서 반공주의자가 된 그는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에서 덜레스 국무장관에 의해 극동담당차관보로 발탁되었다. 한국전쟁을 조속히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여 휴전에 동의하도록 로버트슨을 한국으로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에 앞서 마이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협정이 타결되거나 조인되었을 때 한국정부나 국민들이 휴전을 계속 거부하면 이승만 대통령과 군부지도자들을 감금하고 계엄을 선포하여 군정을 실시한다는 에버레디(EVER READY) 작전을 수립했다. 이승만을 제거하여 휴전 반대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을 점검하는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합참, CIA 등 5개 기관 19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로버트슨 차관보는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한국정부를 접수합니까? 우리 자신을 침략자의 입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요?”라며 당시 분위기로는 폭탄 발언을 했고 군부가 주동이 된 에버레디 작전은 보류되었다. ▶에버레디 작전 수립과 보류가 급박하게 교차되면서 휴전을 조속히 실행하려는 아이젠하워와 한국의 안전이 사전에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승만의 일관된 주장을 접목시키기 위해 덜레스 국무장관은 대통령을 설득하여 로버트슨 차관보를 서울로 파견했다. 이승만을 제거하려던 군부를 고위 외교관들이 설득·저지했고 에버레디 작전을 반대했던 당사자가 한국으로 파견된 것이다. 문민정부 미국이라는 나라의 품격이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1953년 6월25일 서울에 도착한 로버트슨은 7월12일까지 18일 동안 12차례에 걸친 길고도 지루하고 긴박한 협상 끝에 휴전 성립 후 한미상호방위 협정을 조속히 체결한다는 데 합의하기에 이른다. 한국과의 상호방위협정 체결에 줄곧 부정적이었던 미국은 한국정부가 휴전에 동의하는 대신 협정 체결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미동맹의 장래에 많은 도전이 예상되는 현시점에서 남시욱 선배의 저서는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를 찾는 지침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