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준 사회부 차장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앞에서 시뻘건 불길을 목격한 8살 아이는 휴대전화로 소방당국에 구조를 요청했다. 신고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많이 마셨던 탓일까. 이후 아이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져 호흡기 치료를 받았다.

한 달여간 병상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여왔던 아이는 끝내 큰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지난 9월14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저층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는 2살 많은 형도 있었다. 어린 형제는 친모 손에 길러졌다. 그러나 불길이 집안을 휘감았을 때 친모는 부재 중이었다.

소방당국은 주방 쪽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판단을 내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고를 취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8살 동생의 구조 요청에 대한 119종합상황실의 대처 방식이었다.

당시 아이는 “주소를 알려 달라”는 119요원 물음에 정확히 '빌라 명칭과 동·호수'를 알려줬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이 정보만 갖고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용현동에서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빌라가 화재 현장을 포함해 모두 4곳이어서 특정할 수 없었다는 게 소방당국의 주장이다.

이 탓에 불길이 치솟았던 빌라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70여m' 떨어진 용현119안전센터 소방차는 '1분23초' 가량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같은 이름의 빌라 4곳에 각각 가까운 119안전센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출동시켰다면 구조 골든타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소방당국이 아이 눈높이에 맞춘 신고 접수·대응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 신고 접수 당시 녹취록을 보면 119요원은 8살 아이를 '선생님'으로 부른다. 특히 겁에 질린 아이에게 '젖은 수건으로 문을 막으라', '창문 쪽으로 나오라'는 등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아이에게 계속 대답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화재 사고에서 드러난 1분23초의 출동 공백과 대처 방식은 119요원 개개인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소방당국은 이 사고를 계기로 긴급출동 지령 시스템 전반을 면밀히 점검하고 아동의 화재 신고 등 다양한 상황에 영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용현동 형제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