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 내 손안에 있소이다


-노인을 보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다

1사1경로당·우리콩두부사업단 등 통해
지자체 도움만 기다리는 대상에서 탈피
후원 이끌어내고 일자리 만들며 혁신 거듭


-노인 잠재력 무궁무진, 기대하시라



취업지원센터 체계 개편해 구직 역량 강화
컴퓨터 교육·자격증 취득 지원에도 노력
이미 수많은 회원 다양한 분야서 봉사 활발

스스로 일어서 사회공헌 주체로 거듭날 것
▲ 재선에 성공한 이종한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은 “정부의 거시적 정책으로 노인 1000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노인들이 만들어 봐야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 1위, 노인 자살 1위'라는 암울한 꼬리표와 함께 한국의 '고령화 시계'가 오늘도 빠르게 흘러간다. 반면 노인을 위한 정책은 예산과 인력 문제에 부딪혀 발전이 더디다. 노인이 노인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배우고, 일하고, 봉사하는 세상. 노인이 '도움받는 대상'을 넘어 스스로 우뚝 서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이종한(81)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의 도전이 '혁신'으로 불리는 이유다.

 

#기존 방식 과감히 '탈피'하자, '변화'가 왔다

“세상이 변했고, 노인도 변화합니다. 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26일 오전 수원시 노인회 사옥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이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꺼낸 말이다. 노인 지원과 관련해 이 회장의 기본 생각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목소리와 같은 듯하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놓고 '도와 달라'는 일차원적 요구가 아닌, '기반을 만들어 달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앞서 이 회장의 시도와 성과는 그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경로당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로당은 노인에게 필수 시설이지만, 지자체 지원에 100% 의존한 것이 늘 문제였다. 비용이 한정적이다 보니 실질적인 운영은커녕 문을 닫아버리는 곳도 속출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2017년 어느 날, 지자체의 지원소식만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직원들에게 이 회장은 말했다. “왜 나라만 쳐다봐야 합니까. 우리가 해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는 그러면서 '1사 1경로당 사업'을 꺼내 들었다. 회장 선거 공약이기도 한 해당 사업은 경로당과 기업·단체·개인 등 지역 독지가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쪽은 후원·봉사를 받고, 반대쪽은 홍보 효과 등을 거두는 일종의 '상생'이다.

사업 덕에 경로당이 지자체 도움 없어도 노인들이 필요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춰갔다. 사례를 접한 지자체들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노인회가 대신해줬다”며 연결 중간다리 역할을 하자 효과는 더욱 커졌다. 3년의 세월 동안 무려 2787개 경로당이 1864개 업체와 손을 맞잡았다. 이곳에 15억2786만원에 달하는 후원이 이뤄졌다. 운영재원이 확보되면서 '경로당 결핍 현상'도 해소됐다.

마을에 없던 경로당이 속속 들어서 사업 전 대비 500여 개가 늘어났으며, 회원 수는 10만여명 늘었다. 공장이 '혐오시설'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 선한 이미지로 개선됐다는 등 후원하는 쪽의 반응이 좋다. “노인들이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사회적기업까지 따낸 경우는 우리나라 최초죠.”

노인회는 사실 기존 틀을 벗어난 새로운 제도에 다소 주춤할 수밖에 없는 나이 많은 집단이다. 이 회장이 그곳에서 혁신을 던질 수 있었던 건 남모를 자신감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안산시 공직자였던 이 회장은 2004년 처음 노인회에 몸을 담았고, 2008년 지회장을 맡게 됐다. 그때 우선 주목했던 부분은 '일자리'였다. 당시 노인이 일터에서 해고되는 일이 많았지만, 정부·지자체의 취업지원도 거의 없었던 때였다.

“그래, 이거다!” 매일 해결방안에 골몰하던 이 회장이 어느 날 기쁨의 손뼉을 쳤다. 노인들이 지역주민에게 우수한 재료로 만든 식품을 팔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이 회장은 즉시 10명의 직원과 전국 팔도를 비롯한 해외 콩까지 싹 다 수집해 콩물을 만들어보고 시음했다. 결과는 10명 전원이 연천 특산물인 '장단콩'을 찍었다. 그는 이후 두부와 두부 요리를 만드는 '우리콩두부사업단'을 꾸리고 사회적기업까지 취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공간에서 20여명 노인은 매달 40~60만원 수익으로 일할 수 있었다.

경로당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구축, 경로당 점심시간 레스토랑 전환으로 일자리 채용, 경로당 컴퓨터 회계프로그램 도입, 노인 소일거리를 통한 경로당 자립화 등.

16년 세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이 회장의 도전은 전국 지자체와 관계 단체에서 벤치마킹이 줄지을 정도로 입소문 났다. 지난 22일 17대 회장 선거에서 이 회장의 연임에 무려 83%의 찬성표가 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은 “IMF도 이겨낸 노인들은 단순한 퍼주기 지원보다 인생 2막에서 활동할 환경만 충분하면 된다”며 “노인들의 권익 보장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는 매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하는 노인취업 관련 성과조사에서 1위를 따내고 있다.

 

#멈추지 않는 도전 “노인이 직접 해결할 여건 만들자”

“청년들의 경쟁세계가 치열하듯, 노인도 치열해야 맞는 것이죠. 저만 봐도 사회복지사, 상담사, 요양사 등 자격증이 11개 있는 걸요.” 이 회장은 '노인의 잠재력'을 굳게 믿고 있다. 노인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일자리를 구하도록 취업지원센터의 체계를 개편했고, 컴퓨터·스마트폰 교육, 자격증 취득지원 등 그간 접근이 없던 방법도 키워가고 있다.

노인이 스스로 서고, 사회공헌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장기적인 그림이다. 그는 “노인이 행복한 세상은 노인만 아니라 경기도민, 국민의 행복이다. 노인이 욕구를 펼칠 수 있도록 하고, 그의 지혜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지금 경기지역 내 4000여명에 달하는 노인들이 마을정비·노인치매예방·특화활동·노인건강증진 등 분야에서 활발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회장 선거 중 “각성하고 변화하겠다”는 약속을 내건 바 있는 이종한 회장의 또 다른 '혁신'이 170만 경기도 노인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고독사·학대 등 문제가 계속되는 우리나라는 일본의 노인종합복지타운(교육·취업·건강·요양·의료 등 종합지원시설)같은 것이 꿈만 같죠. 하지만 행정인력 여건상 설립이 쉽지 않을 텐데, 결국 노인 문제는 노인이 가장 잘 압니다. 우리가 주체로 해결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

 


 

-이종한 회장은...

 

이종한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은 1939년생으로 전북대 임학과를 나와 1964년 총무처 7급 공채 합격 뒤 안산시 고잔1동장 등을 역임했다. 약 35년 공직 생활을 마치고 노인회에서 16년 넘게 노인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노인의 역량강화 정책을 위해 자신부터 모범을 보이겠다며 2014년 중부대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는 물론,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수많은 표창을 받은 이 회장은 현재 16~17대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 경기도그라운드골프협회장, 대한노인회 상벌심의위원장 등으로 활약 중이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