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주택 일대 정비사업 한창
부평구 '일부 보존론'에 무응답
문화주택촌 헐고 아파트숲으로
동인천탐험단 “현실 안타까워”
신흥동1가 항공사진
/산곡동 영단주택 배치도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주소지가 있다. '신흥동1가 18~20번지'와 '산곡동 87번지'다. 인천시가 지난 2016년 군·구 실태조사로 작성한 210개 목록에는 신흥동1가 18~20번지로 24개, 산곡동 87번지로 7개가 들어 있다.

인천일보가 지난 8월 중순부터 두 달여간 현장조사한 결과, 신흥동1가 해당 주소지에선 근대문화유산 4개가 허물어졌고, 6개는 철거될 예정이다. 이들 모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문화주택'이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7개 모두 내년 철거가 예고돼 있다. 목록에 오른 건축물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근대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신흥동1가와 산곡동은 지역주택조합, 재개발 사업을 앞두고 있다.

신흥동1가 철거 이후

▲'수평' 노동자 단지, '수직' 아파트 개발

지난 21일 찾은 산곡동 영단주택 일대는 적막할 만큼 조용한 분위기였다. 영단주택과 골목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선 높은 철제 담장 안쪽으로 '산곡2-1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한창이었다. 영단주택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식료품 가게를 하는 70대 할머니는 “청춘을 묻은 동네인데 재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건물이 하나둘 비어갔다”고 말했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 무기공장인 조병창 근무자 주거단지로 출발했다. 조병창은 이달 중순 인천시가 80여년 만에 일부를 개방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에 위치했다.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이 한옥으로 설계한 산곡동 영단주택은 같은 모양의 집이 늘어선 형태를 띤다. 기와지붕 아래로 안방·문간방·부엌이 'ㄴ자' 구조로 배치됐고, 작은 마당을 끼고 있다. 산곡초등학교 남서쪽 구 사택만 해도 704호가 동시다발적으로 건설됐다.

수평 구조의 개발 단지였던 산곡동 영단주택에선 내년부터 수직으로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재개발이 벌어진다. 부평구는 “지난 6월 '향토문화유산 전수조사 및 목록화 용역'을 시작으로 근대문화공간을 관리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내년 산곡동 영단주택 기록화도 추진할 예정”이라면서도 영단주택 일부라도 보존·이전해야 한다는 제안에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아파트 개발에 밀려나는 '신도시'

지난 8월22일 신흥동 문화주택촌에서 만난 70대 노부부는 장바구니를 들고 구릉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2층 주택 앞으로는 공터만이 남았다. 이웃들이 떠난 자리에는 지역주택조합이 신축하는 29층짜리 아파트 4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노부부가 사는 집은 인천근대문화유산 목록에 '도시형 단독주택'으로 포함돼 있다. 철거 대상에선 살짝 비껴갔지만, 그들도 조만간 34년 살았던 터전을 떠난다. 노부부는 “살기 좋은 동네였는데 얼마 전 집을 내놨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장벽이 세워진다고 해서 숭의동 빌라를 구했다”고 말했다.

개항기 조계지 바깥 조선인 마을이었던 신흥동에는 인천항과 가까운 해안가를 중심으로 정미소가 속속 들어서고 일본 자본이 흘러들어왔다. 1938년 인천부(지금의 인천시)가 토지구획 정리를 하면서 단독주택들이 모인 신도시가 조성됐다. 하지만 산곡동처럼 신흥동도 아파트 개발에 밀려 오늘날 '빛바랜 신도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신흥동 문화주택촌을 기록화해 책 '신흥동 일곱주택'을 펴냈고, 올해 산곡동 영단주택을 조사 중인 지역예술가 모임 '동인천탐험단'의 오석근 작가는 “인천사람들이 보고 자란 공간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정체성과 역사를 뒤덮는 개발이 되풀이되면 지역 문화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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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4. 빛바랜 신도시 산곡동과 신흥동 “2000년대 들어서 재개발 얘기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집 팔고 떠나기 시작했어. 지금은 마을이 '전설의 고향'같이 조용해. 직원 월급 줄 형편도 안 돼서 소일거리 삼아 공과금이나 내려고 혼자 지키고 있지.”지난 21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봉다방' 주인 최정숙(84)씨가 비어 있는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최씨가 '백마장'으로 불리는 산곡동 영단주택과 마주 보는 건물에서 다방을 개업한 지는 50년 가까이 됐다. 살림집도 다방 위층이다. 최씨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말도 못할 정도로 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