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걸 인하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자신을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스스로 단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깊이 좌절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창의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창의적이지 못한 대학생들 또한 적지 않다. 이런 점은 일반인들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이라 하면 새로운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고 물리학의 흐름을 바꾼 뉴턴이나 아인스타인의 천재적인 창의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개인에게 요구하는 창의성은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물리학 법칙을 발견할 필요도 없고, 우리 모두가 신개념 제품을 발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학교 수업이나 사회 활동 속에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제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제품을 더 유용하게 개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학생들이 자신을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단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낮은 수준이라고 한 창의성 자체가 어려운 것인가?

10여년 전부터 대학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창의적공학설계' 수업을 진행하며 창의성 교육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 학생들은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느낄까?”, “공학도에게는 어느 수준까지의 창의성이 필요한가?”, “교육으로 개인의 창의성을 함양하는 것이 가능할까?”를 고민해 왔다. 이러한 고민 끝에 대학생들은 실제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수업 경험을 통해 창의적이지 못한 학생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의적이지 못한 학생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문제 해결을 서두른다는 점이다. 이런 학생들은 문제를 이해하고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해결책부터 먼저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다. 어쩌다 해결책이 하나 떠오르면, 그 해결책이 모든 것이라 단정해 버린다. 예를 들어 냉장고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냉장고를 새로 사야 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떠올리는 순간, '수리가 불가능한 냉장고를 어떻게 할까?'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전원 코드가 빠졌을 수도, 냉장고 휴즈가 나갔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순간 떠오른 어설픈 해결책에 매달리면 생각의 폭을 스스로 한정하게 되어 멋지고 다양한 해결책을 고안해 낼 수 없게 된다. 학생들은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못 정의하고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문제를 단순하게 본다는 점이다. 문제를 단순하게 보면 그 해결책 또한 단순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스마트 워치에 내장된 심장박동 감지 센서로 개인 건강관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는 사람의 심장박동수가 너무 낮아지거나 높아지면 건강에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여 대응 조치를 취하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그런데 심장박동수가 높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 이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스마트 워치를 찬 채로 달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상황만을 보고 그 외의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최초의 해결책이 단순할지라도 문제가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고 다양한 상황을 다룰 수 있도록 해결책을 계속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창의성 부족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무지하다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또한 무지하면 자신이 고안한 해결책이 실현 불가능한 뜬구름과 같은 허망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속한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것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탁월한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해당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문제 해결 기법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창의성 부족으로 좌절하지 말고, 관련 지식을 배양하고 문제 해결 기법을 깊이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