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 소금길의 마지막 여정은 화성 매향리 평화마을에서 출발한다. 화성방조제 남단부터 이어지는 농작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매향리 평화마을의 초입까지 올 수 있다. 마을 푯말이 있는 곳에서 화성드림파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성드림파크는 리틀야구장과 주니어 야구장, 여성야구장 등 총 8면의 경기장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리틀 야구장이다. 314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7년 5월에 최종 완공됐다. 사실 지금은 야구장이 자리한 이 위치가 미 공군의 사격장으로 쓰였었다. 고온리의 영어식 발음이었던 ‘쿠니 사격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돼 오다 소음 및 오폭에 따른 피해가 생겨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져 2005년 문을 닫게 됐다. 이후 사격장 부지 중 일부를 평화생태공원과 드림파크로 나누어 조성하게 됐다. 평화 생태공원은 현재까지 조성 중에 있다. 가을을 맞은 드림파크 야구장에서는 열띤 응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평화생태공원은 현재까지 조성 중에 있다.
#전쟁 상흔 돌아보는 역사박물관
드림파크 주변으로는 마을의 역사와 의미들을 되새겨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매향리 평화마을은 6.25 전쟁 중이던 1951년부터 미군의 사격 훈련소로 쓰이던 마을이었다. 당시 주로 폭격 표적으로 놓였던 농섬과 매향리는 실전에 가까운 포격을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1954년부터 미군의 사격장 지역 주둔이 가능해졌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발효 후인 1968년도에 이르러 농섬을 중심으로 사격장이 형성돼 갔다. 사격장 건립 후 40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은 폭격기의 오폭으로 인한 생명위협과 폭발 여파, 주택 파괴, 소음에 의한 난청 현상 등의 피해를 겪었다. 실제 오폭 사고와 불발탄 피해로 12명이 사망했고, 손목 절단이나 옆구리 부상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 주민들은 사격장 조성 당시 500만 평 연안의 어장과 50만 평의 농경지 및 임야를 헐값에 팔아야 했다. 대규모 환경 및 연안어장 파괴 등으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져만 갔다.
#평화 되찾은 매향리 마을
피해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 전만규 위원장을 중심으로 1988년부터 소음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연간 250일에 걸쳐 훈련이 이뤄졌고 일일 평균 11.5시간 동안 15~30분 간격으로 수도 없는 훈련이 행해졌으니 주민들의 고통은 엄청났다. 오폭사고와 불발탄 피해로 사망자만 12명에 이르렀고 손목 절단이나 옆구리 부상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도 허다했다. 현재까지도 난청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주민들은 각 정부 부처와 사회단체 등에 탄원서를 넣는 등 폭격장 폐쇄와 피해보상 안전대책 마련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마침내 2005년 미군 사격장 폐쇄가 결정됐고 매향리의 평화가 시작됐다. 평범한 매향리 주민이었던 전만규 위원장은 경기만 에코뮤지엄 컬렉션 100으로 선정됐다.
#캠핑과 낚시로 호황인 고온항
매향리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미군 사격장이 폐쇄된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매향리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막 추수를 마친 듯 흘린 땀을 식히기 위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농부들, 벼 위에 앉아 붙은 고추잠자리, 하늘을 수놓는 철새들까지도 매향리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고 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고온항까지 닿을 수 있다. 우정읍 매향1리 연안에 있는 1983년 축조된 선착장이다. 선착장은 배가 드나드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듯 캠핑을 즐기기 위한 여행객들과 낚시꾼들로 발디딜 틈 없이 호황이다.
고온항을 지나면 경기만 소금길 최종 종착지인 남양방조제가 나온다. 남양방조제는 농업용수확보를 위해 남양만 하구를 가로막아 축조된 방조제이다. 길이 2065m, 높이 35m로 지어졌으며 배수용 갑문 12개가 설치돼 있다.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부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까지 이어져 있는 남양방조제는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2285㏊의 남양간척지가 생겨났다. 간척지 토양에는 알칼리 성분이 많아 쌀이 매우 잘 자란다고 한다.
경기만 소금길 157km 여정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경기만 에코뮤지엄을 곳곳에서 만나며 경기만의 가치를 떠올려보는 귀한 시간을 제공한다.
“매향리에는 여전히 포탄과 상처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매향리 하면 평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평화를 상징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매화향 가득한 매향리 평화마을의 아픔을 다양한 문화기획으로 치유하고 있는 조형예술가 이기일 예술감독은 20일 매향리 마을의 평화를 염원했다. 전투기 대신 새가 날아드는 매향리 마을을 이 예술감독은 4년째 찾고 있다.
“2016년 처음 매향리를 찾았을 땐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폭격을 멈춘지 10년이 지났지만 포탄들과 탄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죠. 모든 것이 황폐했는데 흉물이 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것이 지금의 매향리 스튜디오를 있게 한 매향교회였습니다. 이곳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매향교회는 1968년 마을에 주둔하던 미군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세워 올린 건물이다. 30년간 방치돼 오다 경기만 에코뮤지엄을 만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매향교회는 하나의 조형 작품이 됐다.
“매향리 스튜디오는 이용백 작가의 작업으로 리모델링 됐습니다. 건물 외벽으로 거대한 모자이크를 입혔죠. 흔히 안 좋은 장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데 이것에 착안해 매향리에 안 좋은 기억들, 흔적들을 지운다는 속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매향리 스튜디오에서는 매년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전시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매향리 스튜디오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지역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다.
“2년 전 지역민들과 함께 한 ‘농섬 소풍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제안으로 시작됐어요. 청소년들이 농섬을 다녀와 농섬 일대 갯벌의 흙으로 각자 섬을 만들어 전시를 열었습니다. 이 때 주민들도 농섬을 가보고 싶어해 함께 농섬 소풍을 떠났었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농섬 소풍 이후 주민이 참여하는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연극 ‘매화 향기는 여전해’에서 최연장자이신 87세 이광매 할머님께서 ‘석자’ 역을 맡아 열연해 주셨어요.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이 됐지요.”
이 예술감독은 매향리의 평화를 기원하며 서울 작업실과 매향리 스튜디오를 분주히 오간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면 산골 깊은 동막골에 사는 사람들이 전쟁이 난 줄 몰랐다고 하잖아요. 매향리 주민들은 수도 없이 쏟아지는 포격에 전쟁이 끝난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매향리는 지난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그것이 앞으로 매향리 평화마을을 알릴 밑거름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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