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남은 건물은 5동 정도
전동 산업유산도 철거 위기
“예전만 해도 이 동네에 지붕이 뾰족한 일본식 건물이 많았지. 삼치골목도 지금은 고층 주택이 지어진 양조장 주변으로 생긴 거예요. 양조장 옆에는 다꾸앙 공장이 있었던 거로 기억해요.”
인천 중구 전동에서 70년 넘게 살았다는 김용국(75)씨가 지난 13일 담쟁이 넝쿨에 뒤덮인 2층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동 19에 위치한 이 건물에는 '무단침입 및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김씨가 말한 양조장, 바로 '소성주'를 생산하는 인천탁주 정규성(63) 대표의 기억도 일치했다. 1938년 전동에서 '대화주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가업을 부평구 청천동에서 3대째 잇고 있는 정 대표는 “어릴 적 짠지 공장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다꾸앙' 또는 '짠지', 다시 말하면 단무지 공장 일부로 추정되는 건축물은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에도 포함돼 있다. 인천일보 현장 조사에서 철거가 확인된 46개를 제외하고 현존하는 164개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근대건축물 전문가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항공사진을 판독해보면 1947년 이전에 존재한 건물로 나타난다. 양식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공장 사무시설로 추정된다”며 “전동 일대 양조장과 함께 연구가 필요한 산업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근대문화유산인 전동 공장 건물에도 철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인천일보가 근대문화유산 등기부 등본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건물 소유자가 지난 3월 옹진군인재육성재단으로 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옹진군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지상 5층 규모의 '제2옹진장학관'을 신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장학관 부지에 근대건축물이 있었는지 몰랐다”면서도 “예전 건물을 남겨두면 외관상 좋지 않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대건축물을 지자체가 보존하려고 매입하는 건 극히 일부다. 공공시설 조성이라는 '실적' 앞에 오래된 건물은 '걸림돌' 신세가 된다. 역사성을 강조하는 사업마저 보존보다 철거로 기운다.
지난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시가 중구 해안동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매입해 13동 규모로 조성한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아트플랫폼 홈페이지는 “개항장 일대 과거의 역사는 보존하되 현대적·문화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소개한다. 아트플랫폼 건립은 시의 2000년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존 및 주변지역 정비방안' 용역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인천시 지도포털' 서비스에서 항공사진을 분석해보면, 2007년 1월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근대건축물들이 10개월 후 일부만 남긴 채 허물어진 모습이 확인된다. 원형이 남은 건물은 5동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아트플랫폼의 절반 이상은 벽돌을 쌓아 과거 모습을 재현한 '신축' 건물이다. 당시 철거된 건물 중에는 근대문화유산 4개도 포함돼 있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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