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성동 차이나타운에 내걸린 청천백일기.

 

예상은 했다. 행사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한 달 전부터 학교 담장 너머로 북소리와 호각 소리 그리고 힘찬 구령 소리가 넘어왔어야 했다. 소리는커녕 학생들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등교 금지는 화교 학교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주 10월10일은 109주년 중화민국(대만) 건국기념일인 '쌍십국경(雙十國慶)'이었다. 흔히 '쌍십절'이라고 부르는 날이었다. 필자는 해를 거르지 않고 쌍십절 행사를 치르는 북성동의 인천중산학교(화교학교)에 갔었다. 오전 10시부터 간단한 공식기념식 후 밴드부(악대)의 팡파르로 사자춤, 용춤 등 본격적인 축하 공연이 시작되었다. 두어 시간 동안 모든 순서는 중국어로 진행되었다. 뜻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중국이나 대만의 어느 동네 학교에 와있는 것 같아서 더 흥미로웠다. 짜장면이 아니라 작장면(炸醬麵)을 맛보는 느낌이랄까.

요즘은 학교 혹은 마을 잔치에 그치지만 60,70년대 만해도 쌍십절 행사에 인천시장, 경찰서장 등 기관장들이 반드시 참석해 한국과 자유중국(대만)의 우의를 정기적으로 확인했다. 시내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도 그날만큼은 중국집 문을 닫고 모두 학교로 모였다. 그날 문을 연 중화반점이 있다면 그 집은 '짝퉁' 중국집이 틀림없었다.

올해 학교 행사가 전면 취소된 대신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 사찰 '의선당'에서 조촐한 행사가 치러졌다. 주한대만대표부 부대표와 인천 화교 지도자들이 모여 간단하게 제를 올리고 쌍십절을 자축했다. 그날 차이나타운 거리 곳곳에는 중화민국(대만)의 국기 '청천백일기'가 나부꼈다.

대부분 인천 화교의 국적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아니라 중화민국(대만)이다. 중산학교, 의선당 등도 대만 정부의 소유다. 올 쌍십절에 학교 담장을 넘어와 곳곳에 내걸린 수많은 청천백일기의 펄럭이는 소리는 예년의 북소리, 함성보다도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