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부터 수원 18개 마을골목 누비며
동네·사람 이야기 등 사소한 것까지 메모

“미래의 해답, 과거에서 찾을 수 있어
코로나 이후 기록·보존 중요성 커질 것”

 

▲ 마을기록가 최서영 ㈜더페이퍼 대표(골목잡지 사이다 발행인·편집장).
▲ 마을기록가 최서영 ㈜더페이퍼 대표(골목잡지 사이다 발행인·편집장).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골목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던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 규모와 가격이 도시의 가치가 되고 있는 세태 속에 기록을 통해 마을의 가치를 보존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 이야기를 기록하며 마을의 역사를 쌓아가고, 주민 삶 속으로 들어가 주민 공동체를 복원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수원 최초의 공설목욕탕이었던 남문 경수목욕탕은 음식점이 됐다. 영통 태장동에 있던 농촌진흥청의 잠종장 자리에는 도서관이 들어섰고 그 주변은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서울대 농대와 농진청이 있던 서둔동은 우리나라 농업 기술의 산실이었으나 기관 이전 후 잊혀졌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기록하고 보관해야 역사가 됩니다. 과거 공간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 안에 간직된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남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예전에 존재했던 마을의 이름조차 사라져 버리지요.”

골목잡지 사이다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최서영 ㈜더페이퍼 대표는 12일 마을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2012년부터 수원에 있는 18개 마을의 골목을 누비며 동네이야기, 사람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최 대표는 “수원의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이웃과 이웃, 세대와 세대 사이를 맺어주기 위해 골목잡지를 발행해왔다”며 “손끝에서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자취를 찾아 기록한 것이 마을의 역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을기록을 하며 수원 마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듣는 옛날이야기 자체가 지역의 역사였다. 예전에 신풍동, 장안동은 '녹두골'이라 불렸다. 이 곳에서 장사를 했다 하면 망하기 일쑤여서 남문(팔달문)으로 이동해 장사를 했단다. 녹두는 익으면 다 터져 흩어져 버리니 장사가 되지 않았던 신풍동, 장안동을 가리켜 수십년 전 지역 어르신들은 녹두골이라 불렀던 것이다.

최 대표는 “장안동에 오래 거주하신 할머니께서 녹두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며 “큰 사건만이 역사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과거 삶 자체가 지역의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기록의 애로사항도 많다.

구술을 통해 자료 수집을 하다 보니 때에 따라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전달받기도 하고, 어르신들에게 제공받은 사진에 대해 자녀들이 초상권 문제 등으로 항의하는 일도 발생한다.

최 대표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소통과 관계에 있어 어려움이 따른다”며 “마을기록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을 수 있도록 정보를 뺏어오는데 그치는 약탈적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의 해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 기억 등으로 살아가게 될 것으로 과거에 대한 기록과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최 대표는 “앞으로는 새로운 것만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닐 것”이라며 “기억들이 모아지고, 놓치고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마을기록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들 간의 마주침이 생기고,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공동체가 생겨난다”며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마을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이주해와 수원에 터를 잡고 수년 간 수원의 마을 이야기를 기록해온 최 대표는 앞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마을기록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 대표는 “마을기록이 기관 사업의 대상물이 돼 지금처럼 자료집만 발간하고 끝나는 형태가 돼서는 안된다”며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돼 지속성을 가지고 꾸준한 아카이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정 기자 zoey050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