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수제 맥주 전문점 '칼리가리'에서 여성 손님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인천일보<br>
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수제 맥주 전문점 '칼리가리'에서 여성 손님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인천일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국민주'는 무얼까요?

막걸리? 소주? 맥주?

모두 예상했던 바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은 맥주입니다. 국세청의 주류 출고량 통계자료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술 3436㎘가 출고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맥주 출고량은 1737㎘로 소주 920㎘를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심정적으로 우리 전통주인 막걸리나 서민의 술 소주가 '국민주' 반열에 올라야겠지만, 출고량으로 따지자면 맥주에 '국민주' 자격을 부여하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국세청 주류 출고량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술 3436㎘가 출고되었다. 이 가운데 맥주 출고량은 1737㎘로 소주 920㎘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사진=국세청 캡처

그렇다면 맥주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기원전 4200년께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발효해 구운 빵으로 보리의 맥아를 당화해 물과 섞어 맥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맛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오늘날 맥주 제조법과 거의 유사한 제조법이니만큼 맛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중세 수도원에서도 맥주를 음료로 마셨다고 합니다.

홉을 넣은 오늘날 맥주를 만든 사람은 12세기 독일 과학자이자 베네딕트파 수녀인 힐데가르데입니다. 힐데가르데 공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일이 맥주의 원조라고 자랑할 만 합니다. 물론 자존심 센 영국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요. 영국에서는 발효탱크 상부에서 작용하는 효모로 빚은 에일을 최고 맥주로 치지요. 독일에서는 탱크 하부에서 작용하는 효모롤 빚은 라거를 즐겨 마십니다.
 

기원전 4200년께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발효해 구운 빵과 보리의 맥아, 물을 섞은 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마신 이 음료가 인류 최초의 맥주로 기록된다. 사진은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 /사진=인천일보
우리나라 맥주시장은 일제강점기 일본 자본이 세운 맥주 공장에서 출발한 하이트와 OB가 80년 간 양대 산맥을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세계 유명 맥주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해 한국 술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막걸리 천국이었던 우리나라는 1933년 처음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설립했고, 기린맥주가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습니다. 광복 후 일본 자본이 세운 맥주회사는 미군정에 의해 관리되다가 1951년에 민간에 매각됩니다. 이때 조선맥주는 오늘날 하이트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를 거쳐 오늘날 OB맥주로 이어져 옵니다. 그 중간 세월 동안 IMF를 겪으며 국내 주류회사도 이리저리 인수 합병되고 대기업 롯데에서 주류회사를 설립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간략히 보자면 하이트와 OB가 맥주의 양대 산맥을 구축합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까지 맥주 판매량은 OB가 독보적인 1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OB의 모회사인 두산그룹의 계열사가 91년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해 오염시킨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으로 소비자들은 OB 불매운동을 벌이고 OB는 잠시 1위 자리를 하이트(당시 브랜드명 크라운)에 내줍니다. 물론 곧 다시 1위를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하이트는 지하 1000m에서 끌어올린 천연암반수로 만든 '하이트'를 내세우며 만년 2위의 설움을 깨끗이 털며 1위로 등극하게 됩니다.

장황하게 맥주의 역사와 우리나라 맥주 연대기를 설명했더니 입이 마르네요.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납니다.

여러분들이 잘 모르시고 있는 사실 하나, 인천은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도시입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며 인천을 통해 맥주가 공식 수입되기 시작합니다. 강화도조약 5년 전 1871년 인천 월미도에서 맥주병을 안고 있는 조선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개항도시 인천을 통해 들어온 맥주는 조선 술꾼들의 입맛을 자극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인천의 맥주가 다시 날갯짓을 하게 됩니다.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버려진 곡물 창고에 수제 맥주 공장 '칼리가리브루잉'을 세운 박지훈 대표. 박지훈 대표는 이곳에서 수제 맥주 펍으로 시작해 손님들이 늘어나자 사업성이 있다고 보고 수제 맥주 공장을 설립하며 맥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사진=인천일보
'칼리가리 브루잉'의 수제 맥주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신포 우리맥주'. 인천 지역의 문화와 멋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인천일보

그런데 맥주 공장이 없는 인천에서 무슨 맥주냐고요? 최근 수제 맥주 바람이 일면서 대규모 맥주 공장이 없지만 맥주가 수입된 개항도시 인천의 특색을 살리는 수제 맥주가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항과 근대문화의 유산이 남아 있는 인천의 개항장 거리인 신포동에 뉴트로풍의 수제 맥주 공장이 있어 찾아가 봅니다.

인천 중구 신포동 일제강점기 시절 창고로 쓰였던 건물에 보리 향기로 가득합니다. 바로 수제 맥주 공장인 칼리가리브루잉입니다.

이곳 사장님이신 박지훈 대표는 어린 시절 보았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란 영화에서 이름을 딴 수제 맥주 공장을 열었습니다.

칼리가리브루잉은 수제 맥주 공장 옆 한편에 멋진 펍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버려졌던 창고였는데 이를 개조해 맥주 공장과 맥주 펍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인천 신포동 앞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인천항이 있던 곳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곳엔 오래된 창고 건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창고들은 곡물 창고로도 사용되었는데, 이렇듯 한동안 버려졌던 창고는 인천 최초의 수제 맥주 공장으로 재탄생하게 된 겁니다. 게다가 곡물 창고와 맥주, 무언가 절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사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와 홉이 곡물이니까요.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산업기를 거쳐오면서 곡물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던 신포동 일대 물류 창고에 들어선 수제 맥주 설비. /사진=인천일보

수제 맥주의 특징이라면 획일화된 맛이 아닌 다양한 재료와 제조법에 따라 맛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맛과 향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신포 우리맥주'입니다. 인천의 지명을 딴 맥주다 보니 뉴트로 감성과 문화적 코드를 느끼려는 많은 술꾼이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개항장' 등 인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있는데요, 칼리가리브루잉은 2019년 대한민국 주류대상도 받았습니다.

박지훈 대표는 "인천 맥주로서 인천 브랜드를 알릴 계획이며 품질과 문화적 코드도 있으니 많은 사랑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인천 맥주냐고요?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인천에서 수제 맥주를 마시는 것은 개항기와 근대문화의 아우라를 함께 마시는 것입니다. 바람 불고 외로운 날에는 인천 신포동 거리를 거닐면서 맥주 한잔 하시는 건 어떤지요.

자, 한잔 쭈욱∼∼∼∼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