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추혜인 지음, 심플라이프, 336쪽, 1만6000원

 

“의대생이나 젊은 여성 의사들이 성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병원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느냐고. 이 싸움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계산하면서 싸우는 것, 누구와는 싸우고 누구와는 동지가 될 것인지 고려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싸울지 신중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 무엇보다 싸울지 말지부터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싸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잘 지키고 숨죽여 지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 안에서 싸우는 데는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137쪽)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국내 최초 여성주의 병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의사 추혜인 원장 에세이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가운데 한 구절이다.

건축학도를 꿈꾸던 그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진로를 바꿔 의대에 재입학 했다.

20대부터 자전거 타고 왕진 가는 동네 주치의가 된 지금까지 여자로, 의사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과 철학,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 60여 편에 담았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안전한 의료 시스템을 향한 열망이 만들어낸 한 지역 의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치료기이자 압축된 생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의사가 된 사연부터 살림의원을 만들게 된 과정,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며 맞닥뜨린 의료 현장의 문제점, 이웃과 환자들의 왁자지껄한 사람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의료계의 이모저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존에 가졌던 의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도 존중받으며 일상을 영위하고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뭉클하고 재미있게 그려낸다.

요즘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돌봄, 존엄한 삶과 죽음, 이웃, 인간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