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한국에도 마이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는 제4차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처음 언급됐다. 모두들 먼 나라 얘기로만 흘려 들었다. 1980년대 어느 해 국제기능올림픽 취재 차 영국 버밍엄엘 갔다. 영국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공장들이 많았다. 호텔 인근 공장의 축구장만한 공터가 온통 승용차들로 채워져 있었다. “저 공장은 자동차 메이커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가용차였다. 울산, 포항 등 한국의 공업도시들에서는 공장노동자들의 자전거 출퇴근 행렬이 도로를 메우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후반, 드디어 마이카 시대가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고도성장기 사회는 밤 세워 술을 권했다. 음주운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범죄와의 전쟁 수준으로 단속이 강화됐다. 여기서 한국 특유의 신산업이 등장한다. 대리운전이다. 처음에는 술집 웨이터나 주방 직원 등이 단골손님의 차를 몰아줬다. 그러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문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공유경제 선발주자인 타다까지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했다. 그러나 대리운전은 한국에서만 성업 중이다. 미국만해도 밤 늦은 시간에 취한 채로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차 키를 넘겨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더 할 것이다.

▶마이카를 넘어 '1가구 2차' 시대에 왠만한 교통사고는 신문 사회면에 오르지 못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활개치는 요즘, 엽기적인 교통사고가 줄을 잇는다. 이달 초 인천 을왕리에서는 심야에 치킨 배달에 나섰던 50대 가장이 중앙선을 넘어 온 음주운전 차에 희생됐다. 너무 취해선지 가해자가 도리어 당당하게 나와 공분을 쌌다. 지난달 말 수원에서도 음주운전 차에 들이받혀 여성 경찰관이 숨지기도 했다. 19개월 된 아기를 키우던 피해자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장기를 기증했다고 한다. 지난 주 평택에서는 30대 여성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이도 모자라 편의점 안에서 전진 후진을 거듭하며 모조리 부숴놓았다. 분노조절장애 얘기가 나왔다. 부산 해운대에서는 2번씩이나 사고를 내고도 도주하다 7중 추돌사고까지 일으킨 '광란의 포르쉐 도주극'도 있었다. 마약 흡입 후의 환각 질주였던 것이다.

▶결정판은 다시 인천에서 나왔다. 이번엔 대리운전 기사까지 술에 취해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일산에서 수도권순환고속도로 장수IC까지 28㎞를 내달린 끝에 가드레일 등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차주와 대리기사가 모두 취한 차의 질주라니. 쓰다보니 여의도발 '안중근 의사' 논란도 함께 떠오른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후손들이 “안중근 의사가 묘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라 할 정도였다. 왜들 이러는가. 모두가 취해 돌아가는 세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