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혁

 

공원에 다 같이 모이니 좋구나, 힘 난다. 누가 놓았는지 모를 모닥불이 타는데. 흙더미에 파묻힌 손목 당겼더니 죽음이 벌떡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듯, 살아서 모이니 좋구나, 가족처럼 흥이 난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즐겁고 불안한 시절 숲속에 버려두고. 길고 넓은 포장도로 건너오며 다 잊으니 좋다, 연말 아스팔트 깨는 드릴처럼 신이 난다.

한밤 모여서 불을 쬐니 좋구나, 같이 먹으니 모처럼 기운 난다. 이걸 어디에 쓸까, 불길 앞에서 궁리할 때 바람이 나무 흔들어주니 좋고. 날리는 훈연에 웃음과 기침이 터진다. 돌아갈 운명인데 돌아갈 생각 안 나니 좋다. 호수에 동전을 던졌더니 금화는 꿈속에 쌓이듯이, 공원에 실없이 모이니 좋구나, 힘 난다. 우리 것 아닌 모닥불 꺼져간다. 우리 것 아닌 공원은 좋구나. 기억이 다 같이 착해진다, 좋다.

 

▶“다 같이 모이니 좋구나”라는 이 한 마디가 이렇게 절실할 줄이야. 그냥 아무 일도 없이 공원에 모여 모닥불을 함께 바라본다는 것. 실없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소중한 것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즐겁던” 시간. “한밤 모여서 불을 쪼니 좋구나, 같이 먹으니 모처럼 기운 난다”는 말을 이제는 하고 싶다. 그저 아무 일이 없어도 실없이 만나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운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