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뮤지션 '방사능' 곡 가사에
지역 정체성 규정 요소로 삽입

영화 '장사리' 학도병 사투 재현

동명의 영화선 해군 활약 그려
반공주의·미군 신격화 비판도
▲인천상륙작전 중 상륙정 네 척이 인원과 장비를 인천 해안에 내리는 모습./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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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이크 내 리듬 내 맘이 있는 이 곳에 인천, 내 고향 내가 나고 자란 곳 그 이름을 드높여, 인천상륙작전.”

힙합 뮤지션 방사능(현 리듬파워)의 노래 '인천상륙작전'의 한 구절이다. 인천 출신 세 명의 멤버는 인천에서 살아온 삶과 그들이 생각하는 인천이란 지역을 노래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노래는 한국전쟁 당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 '9·15 인천상륙작전' 그 자체를 의미하진 않지만 역사적 고유 명사를 노래 제목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인천상륙작전이 인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 중 하나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는 “이 노래는 지역을 대표한다고 본격적으로 외치는 최초의 한국 힙합 노래”라고 평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인천의 역사라기보다 미군과 UN연합군, 더 좁게는 더글라스 맥아더 전 UN군 최고사령관의 역사에 가까웠다. '인천상륙작전=맥아더(UN군)'라는 인식은 한국전쟁의 무수한 희생자들의 역사를 가려왔다.

▶관련기사 2·3면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을 인천 역사, 나아가 우리의 역사로 끌어오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김태훈·2019)이 대표적이다. 장사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뒤에 가려진 비극의 역사 그 자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날, 적군 교란을 위해 인천의 반대인 동쪽 해변가 경북 영덕군 장사해변에 상륙한 문산호에는 700명이 넘는 10대 학도병들이 타고 있었다. 6일간 사투 끝에 대부분 목숨을 잃고 실패한 작전으로 묻혀 버린 이 전투는 1997년 장사해변에서 문산호와 유해가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졌고 영화로 제작됐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전쟁사에서 인천이 주연이라면 장사리는 이른바 '엑스트라 역사'로 사람들로부터 잊혔다”며 “영화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주목의 대상으로 끌어내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소환했다”고 평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정면으로 다룬 가장 최근 영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2016)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영화의 큰 줄기 중 하나인 8인 해군첩보부대의 활약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인천으로 가는 바닷길을 열다 희생한 그들을 통해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들을 조명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악에 기반한 반공주의 시각과 미군에 대한 신격화라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맥아더 장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한국 소년병의 얘기 한 마디에 감동해 소년병의 나라를 구해줘야겠다고 결심한다”며 “소년병을 만나는 장면도 그리스신화나 불경, 성경에 나와 있는 모티프에서 착안한 느낌”이라고 평했다.

/탐사보도부=이주영·김원진·이창욱 기자

chuk@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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