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 중에서 의사집단, 종교집단, 검찰집단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들 집단이 정부 정책에 대해서 항의집회, 진료거부, '항명'이라도 할라치면 국민들은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적 근성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식으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낸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와 질책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영향력도 있는 집단이 반복적으로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느 연구소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13년까지 실시한 '우리 사회의 영향력 기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관의 상위는 물질적 부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대기업이고, 다음이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검•경찰과 사법부이며,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정당은 여야 관계없이 낮은 순위에 있다. 지금 조사하더라도 결과는 2013년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이나 국가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보다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 더 크고,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반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영향력이 큰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앞에만 서면 괜히 작아지고 고개도 숙이게 되고 말과 행동도 고분고분해지니까. 순순히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돈으로 구슬르거나 협박을 해서라도 결국에는 자기 뜻에 따르게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돈도 없고 권력도 갖지 못한 사람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고, 더 열정적이고, 더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될 때 쾌락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권력에 중독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편법이나 불법을 써서라도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안달이다. 우리 사회가 1등만을 알아주는 경쟁사회이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정치심리학자 켈트너(Dacher Keltner)는 최근에 나온 자신의 저서(The Power Paradox)에서 아무리 선한 목적과 도덕적인 수단•방법으로 잡은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권력을 손에 쥐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권력의 패러독스(power paradox)'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권좌에 오를 때까지 소외된 사람, 빈곤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려 하고, 베풀고 감사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돈이나 권력을 얻어 영향력이 커지면 갑자기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준법정신과 도덕적 감정도 약해지며 충동적인 언행을 쉽게 하고, 다른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은 높은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부패하고 타락해지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분고분 해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쾌감에 중독되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그 쾌락을 계속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의 패러독스를 피하고 선한 사람으로 남고 싶으면 자기 감시와 통제를 잘해야 한다.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감시와 견제는 불가피하다. 특히 국민이 직접 선출•심판하지 않고 시민단체나 언론의 감시도 쉽지 않은 검•경찰,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이나, 의사•약사•변호사 단체 등과 같이 다른 집단에 비해 영향력이 큰 이익집단이나 종교단체는 자기 감시와 통제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희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럴 경우 어쩔 수 없이 국민은 직접 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를 통해서 감시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