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의 위력이 대단하다. 가장 큰 변화는 코로나19 통금이다. 밤 9시 이후에는 식당에서 밥이며 술을 먹다가도 일어나야 한다. 오래 전 밤 10시 정각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멘트가 떠올려진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야말로 돌아갈 곳은 집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코로나19가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우리들 귀가길을 지켜보는 듯 하다.

▶2.5단계가 시행되자마자 여러 저녁 약속들이 줄줄이 취소된다. 처음 누군가가 단톡방에 '저는 괜찮습니다만…'이라며 먼저 간을 본다. 약속을 잡은 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좀 그렇지요?'라고 하면 취소로 결론난다. 전혀 대꾸가 없는 사람이 있어도 없던 일이 된다. 지난 주 불가피한 사정상 만장일치로 저녁 모임을 강행한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니 장면 장면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먼저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은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때가 어느 땐데, 금쪽같은 시간을 축내느냐는 거다. 첫 잔의 건배사는 “8시59분까지”다. 저마다 틈틈이 시간을 재확인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이렇듯 알차게 정을 쌓다보니 8시 59분도 부족하지 않더라는 소회였다.

▶갈 곳이 없다거나 코로나 통금 등의 푸념은 감정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 너머에는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의 처진 어깨와 한숨소리가 쌓여가고 있다. 대다수가 농민의 자식들이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 자영업을 하는 집의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시장 모서리 한두평 가게집의 아이라도 옷차림부터 달랐다. 그런 자영업자들의 삶이 1997년 외환위기 때 첫 직격탄을 맞았다. 그때는 무능한 위정자들을 탓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하소연할 곳도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유령처럼 목을 죄어오는 것이다.

▶거리두기 단계 격상 첫날, 인천일보 1면 헤드라인은 '가게도 거리도 텅텅 비었다'였다. 서울 어느 카페에서는 대폭 내린 가격표 밑에 '힘듭니다. 힘듭니다. 힘듭니다.'라고 덧붙여 놓았다. 경기 안양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자매는 쌓여가는 빚에 못이겨 극단의 선택까지 했다. “두달치 임대료 내주겠다”는 조건의 IMF식 눈물의 점포정리 소식도 들려온다. 이 와중에 일자리를 잃거나 무급 휴가를 가야하는 청년 알바들은 또 얼마나 힘들 것인가. 다행히 2차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핀셋형'으로 설계될 것이라고 한다. 언 발에 오줌누기일지라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 자영업자들의 눈물에 더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2.5단계 시대를 얼른 통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