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렬로 된 책상에 종이가 수북이 쌓여있다. 사람들은 예산편성 계획부터 추진 현황, 날짜 등이 적힌 종이를 놓고 만지고 필기하며 열띤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이렇게 쓸모 있던 종이는 그 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폐기처리, 즉 쓰레기로 직행한다. 매년 지자체에서 열리는 행정사무감사의 실상이다.

올해 수원시와 수원시의회가 종이 없는 ‘노페이퍼(No-Paper) 행정사무감사’를 추진하고 나서 주목받는다. 벌써부터 “우리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벤치마킹도 나왔다.

30일 수원시의회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매년 10~11월 기관업무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목적의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를 개최하고 있다.

사무기간에 앞서 8월말쯤 되면 각 상임위원회 의원들은 시 집행부에 운영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하고, 집행부는 내용을 담아 종이문서(주 A4용지)로 출력하고 있다.

한 건의 자료 처리에 적게 몇 장부터 많게는 수백 장에 이르는 종이가 소비된다. 수원시는 산하기관을 제외한 본청·구청만 해도 종이 소비량이 420박스 규모로 조사됐다.

또 출력 후 파쇄, 별도 자료 등을 합하면 1000박스가 넘는 종이가 쓰인다. 무게로는 20톤 분량이다. A4용지 생산에 필요한 나무를 빗대면 행감 1회에 약 340그루가 잘린다는 계산이다.

시의회와 시공무원노동조합이 이 문제를 놓고 지난 21일 첫 논의에 들어갔고,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맞춘 상태다. 의회사무국도 26일부터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

개선 방안은 종이문서 대신 노트북, 이동식기억장치(USB) 내 전자파일로 행감을 진행하는 것이 골자다.

최창석 노조위원장은 “별거 아닌 듯 하지만 매년 전국적인 연례의식 때문에 엄청난 나무가 잘려나간다”며 “자원낭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피로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사안은 컴퓨터 사용에 미숙한 의원, 보안상 우려 등 해결과제도 있어 오는 31일 의장단회의를 통해 재차 논의될 예정이다.

조석환 의장은 “환경을 지키는 취지에 공감한다”라며 “문제는 방식 변화에 따른 혼란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대해 의원들끼리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정 부의장도 “예산절감 등 차원에서 장기적으로는 꼭 바뀌어야 할 일”이라며 “초기 혼란이 좀 있을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종이자료는 별도로 두고 USB를 잘 정리하면 큰 무리 없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 같은 사례를 접한 단체에서 응원을 비롯해 도입 확산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공주석 공노총 제도개선위원회(시군구 연맹) 위원장은 “수원시의 모범 사례를 여러 지역 단위 노조에 홍보했고, 확산 방법도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전국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에 공식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