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좋고 역사 깊은 천년고도에/우리 학교 차지한 터 반석이로다/아침 하늘 햇빛 같은 송도 송도야/비치어라 너의 빛을 해륙동서에”

인천 송도고등학교의 교가 1절이다. 교가에서 읽히듯, 민족주체성을 드높여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세웠다는 학교 이념이 눈길을 끈다. 1906년 10월 개성에서 한영서원(韓英書院)으로 설립했으니, 개교한 지 110년을 훌쩍 뛰어넘는 사학(私學) 명문이다. 기독교 정신을 계승한 '봉사'의 교훈 아래 전인교육에 힘을 쏟는다. 여기서 학교명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많은 사람이 송도고교를 송도(松島)고교로 잘못 알고 있다. 일제 때부터 오늘날까지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송도(松島)가 아니다. 송도(松都)가 맞다. 본디 고려시대 도읍이었던 개성의 별칭인 송도(松都)를 학교 이름으로 정했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개성에서 태어난 송도고는 1909년 4월 소학과 4년, 고등과 3년으로 편성해 1910년 제1회 졸업생 10명을 배출했다. 1917년 4월 송도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소학과를 분리했다. 1938년 5년제 송도중학교로 개편하고, 1950년 학교법인 송도학원(松都學園)으로 인가를 받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3년에 인천시 중구 답동으로 교사를 옮겼다. 학교 이전을 즈음해선 전쟁으로 어려워진 불우 청소년들을 받아들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봉사'란 교훈에도 부합한다. 10월3일 개천절이 개교 기념일로서, 민족주체성을 잘 살렸다고 여겨진다. 1970년 송도고교와 송도중학교로 분리했다. 고교는 1983년 연수구 옥련동에 교사를 신축·이전하고, 중학교는 답동에 남았다. 2006년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열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송도고교(당시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출신 인물 10명이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대상자에 올라 관심을 모은다.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얼마 전 광복 75주년을 맞아 일제에 맞서 싸운 558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이 가운데 윤재환 의사를 비롯한 송도고보 출신 10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1934년을 전후해 간도까지 지배한 일제로 인해 조국 광복의 터전을 잃었다며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이다 붙잡혀 갖은 고초를 겪었다고 알려졌다. 한 학교 출신이 이처럼 많이 독립유공자에 오른 일은 드물다. 송도고보에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재학생이 대거 참여해 다치거나 체포되고, 주모자들은 수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자 발굴은 '현재진행형'이다. 의병을 비롯해 3·1 만세시위, 임시정부·국내외 반일·농민활동 등에 참여한 다양한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족뿐만 아니라 인천학연구원 등 여러 관계 당국의 노력이 가일층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독립을 위해 오롯이 투쟁에 앞선 선구자들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길 기대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