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2018년부터 유적발굴 시작 … 안내판 설치
수원 '서호구국민단 결성지' 등 120곳 확인
▲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삼일중학교에 항일운동 역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1920년대 삼일학교 학생들이 전개한 항일 비밀결사운동과 동맹휴학의 현장이다. 현재는 학교 도서관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13일 오전 10시 수원시 서둔동의 농촌진흥청 옆 공원 산책로. 한 정자 앞에 50대 여성이 집중해서 무엇인가 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안내판'이다.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서호 구국민단은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와 이득수가 1920년 6월 임순남·최문순·이선경을 규합해 조직한 독립운동 결사체다. 이들은 조선 독립과 일제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가족을 구조하는 활동을 폈다.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펴나가다가 일제에 발각돼 투옥됐다. 평소 무심코 지나간 곳이 '구국민단'을 결성하기 위해 비밀리에 준비모임을 하던 항일 운동지였던 것이다.

50대 여성은 “20년 넘게 수원에 살면서 이곳에 독립운동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많은 시민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지역과 시민, 공공기관의 무관심으로 자취를 감췄던 경기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2016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항일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무분별한 개발로 흔적조차 사라지거나,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적지를 되찾자는 것이 핵심이다. 조례에는 항일유적 발굴 지원 근거에서부터 안내판 설치 등 보존 수단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1945년 광복 이후 61년이라는 세월 속 많은 사적지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학계에 의해 밝혀진 234곳 중에서도 무려 90%가 넘는 214곳이나 된다. 이름을 알린 독립운동가에서부터 민초까지 무분별하게 포함됐다.

도는 조례 제정 이후 바로 행동에 나섰다. 2018년 전문가들과 함께 기록서를 뒤지면서 31개 시·군을 조사했다. 그 결과 건조물 38곳, 부지 181곳, 현충 시설 38곳 등 257곳을 찾았다.

이 중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독립운동 사실이 입증된 곳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명인 김세환이 3.1운동 당시 살았던 '김세환 집터' ▲1927년 9월24일 부천 소사역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일본인 역장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해 동맹파업을 한 '소사역 하역 노동자 동맹 파업지' ▲1896년 2월 가평과 춘천 연합 의병이 일제의 사주를 받은 관군과 전투를 벌인 '보납산 의병 전투지' 등.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 광복될 때까지 민초들의 희생정신이 묻어 있는 120곳이다.

이전까지는 안내시설조차 없었다. 생생한 흔적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후손들이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이 우선이다. 지금도 많은 장소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에 도는 '시민 알리기'를 다음의 과제로 세웠다. 지자체와 학교가 연계해 지역 내 역사 장소 탐방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도 관계자는 “잊히고 훼손될 우려가 있는 유적지에 안내판을 설치했다”며 “매개체가 마련된 만큼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힘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현우·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