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핸드볼팀 내부 부조리 심사
솜방망이 징계 처분 실망감 초래
어설픈 해명·판단착오로 화 키워
과정상 성인지 감수성 부재 눈총

'근무 중 골프' 등 직원들 일탈까지
시민제보 받고도 회장엔 늑장보고
“구시대 사고방식 버려야” 자성론

“체육회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수준인데 대부분이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도 따라가지 못한다. 상황을 보는 인식도, 대처하는 방식도 모두 낡았다.”

“그동안 '갑'의 위치에서 현장 체육인들을 상대로 다소 일방적인 행정을 했기 때문에, 이해가 충돌하고 갈등이 생길 경우 조율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능력이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망·불신·분노 부른 솜방방이 징계

오영란 선수와 조한준 감독에 대한 각종 부조리를 폭로하고자 준비할 때부터 인천시청 핸드볼팀 선수들은 인천시체육회를 전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시체육회에 먼저 알려지면 사안이 덮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철저히 함구하며 정치권이나 언론 등 다른 루트를 찾아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시체육회가 아직까지 뭔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강력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체육회는 철저한 조사 및 처벌로 이같은 불신을 말끔히 씻어내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인천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달 인천시청 핸드볼팀 조한준 감독에게 출전정지 3개월(6개월에서 상훈감경/직무태만 및 품위손상 등), 오영란에게 자격정지 6개월(회계질서문란, 사회적 물의, 성희롱 등)의 징계를 결정했다.

문제를 제기한 선수들과 일부 부모들은 “봐주기, 솜방망이 징계”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리고 스포츠공정위원회가 내놓은 “우린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철저한 조사에 한계가 있고, 조 감독 금품수수 관련 사안은 금품을 제공한 선수들도 문제가 될 수 있어 깊이 다루지 않았다. 또 조 감독이 술자리에 선수들을 부르기는 했지만 직접 부적절한 행위를 한 당사자는 아니어서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이들의 분노에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해당 처분 및 인천시체육회에 대한 실망과 불신, 분노가 얼마나 크고, 그리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이들이 최근 대한체육회 등에 낸 재심의 신청서에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인천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시체육회 및 조 감독 등 인천시청 핸드볼팀 스태프와 친분 때문에 이 사안에 '온정적으로 접근'했고, 이 때문에 조사 및 처벌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며 재심의를 신청했다.

그러면서 “오영란 선수 및 조한준 감독에 대한 인천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솜방망이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 심지어 김영란법 위반 혐의가 있는 조한준 감독의 금품수수 행위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김영란법에 따른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 및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금품수수는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하는 매우 위중한 사안임에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를 별 문제 아닌 듯 평가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켰다.

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징계 당시 '조 감독이 스승의 날 및 자신의 생일날 선수들로부터 관행적으로 상품권, 시계 등의 선물을 받았다'고 인정했지만, 이를 단지 '체육인으로서의 품위를 훼손한 잘못'이라고만 판단해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피해 선수들은 “조 감독이 술자리에 선수들을 불러냈고, 그 자리에서 체육회 직원들에 의해 부적절한 행위가 벌어졌지만 이를 말리는 등 선수들을 지켜주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를 외면하며, 해당 사안을 아예 징계 사유에 포함하지도 않는 등 봐주기로 일관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체육회 일각에서는 “좀 더 강력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했다. 상황인식이 너무 안일했다”는 후회가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만시지탄일 뿐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인천시체육회는 오영란 선수와 조한준 감독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A선수에 대해 선수관리규정 등을 이유로 1년 6개월 넘도록 이적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다 최근 갑자기 동의하는 등 오락가락 행정을 펴 불신을 자초했고, '폭로 주범 찍어내기 아니냐'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낮은 성인지 감수성, 근무 중 골프도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최근 체육회 직원 2명이 '현장 조사'를 이유로 출장을 나간 평일 오후 스크린 골프(하루 2시간씩 육아휴직 중인 1명은 목적 외 사용, 1명은 근무지 이탈)를 즐긴 사실까지 드러나는 등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나사가 풀려있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 시체육회는 익명의 시민으로부터 전화 제보를 받고 이 사안을 인지했음에도, 이규생 회장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아 관련 부서 간부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

특히,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피해 선수들에게 행해진 2차 가해성 사례도 인천시체육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준다.

지난달 29일, 직원 4명이 조한준 감독과 가진 술자리에 인천시청 여자 핸드볼팀 선수들을 불러 술 강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열린 인천시체육회 징계위원회에서 위원들은 참고인으로 나온 피해 여성 선수들 앞에서 “오래 전 일인데 기억이 잘 나느냐”는 등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더군다나 칸막이 설치 등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점 역시 여성 선수들에게는 고통이었다. 피해 여성 선수들은 당시 불쾌했던 상황을 계속 떠올리면서, 남성 징계위원들이 그들을 보며 던지는 질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해야 했다.

한 피해 선수는 “솔직히 징계 위원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기억하기 싫은 당시 상황을 자꾸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해 무척 힘들었다. 게다가 징계 수위까지 낮으니 너무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육회 일각에서나마 이런 상황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며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간부 직원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체육회가 현장 체육인들과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구시대적 인식과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낡은 잣대로 바라보고 판단하며, 낡은 방식으로 대처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계속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특히, 현장 체육인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질수록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조율하며 대안을 찾는 능력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갑의 위치에서 체육회 위주로 행정을 펼치던 오랜 관행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