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충남 태안 안흥항 앞바다. 주꾸미를 잡던 어부가 청자 접시 하나를 건져 올린다. 주꾸미 통발은 소라껍데기를 줄줄이 달아 바다에 넣어 놓으면 주꾸미가 그 안에 들어가 알을 낳고는 입구를 자갈 등으로 막아 놓는다. 그런데 그 소라껍데기에 들어간 주꾸미는 입구를 청자 접시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청자 등 2만5000여 점이 발굴된 고선박 '태안선'은 주꾸미 덕분에 700∼80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당시 발굴에 참가했던 이들이 “주꾸미 공덕비라도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해저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신안선'(1976년)이다. 지금은 대표적 슬로우시티로 변모한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다. 이 역시 한 어부가 그물에 고기는 잡히지 않고 사금파리 조각들만 올라오자 그 중 온전한 접시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 개 밥그릇으로 쓸 요량이었다. 1984년까지 11차례 발굴에서 중국 도자기 2만여개와 동전 20여t, 동남아시아산 향료•향나무 등이 나왔다. 1323년쯤 중국의 닝보를 떠나 신안을 거쳐 일본 하카다로 향하던 무역선이었다.

▶문화유산이 왕의 무덤 등 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다 밑이나 해안의 갯벌 속에도 긴 세월을 넘어 묻혀 있다. 특히 서해는 갯벌이 발달돼 유물의 보존 환경도 탁월하다고 한다. 주로 목선인 옛날 배가 화물을 많이 싣고 침몰하면 그 무게로 인해 점점 갯벌 속으로 파묻힌다고 한다. 갯벌은 외부로부터 햇빛 등을 차단해 선체와 유물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백, 수천년만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옛 난파선들은 '보물선'인 셈이다. 또한 당시 뱃사람들이 쓰던 온갖 생활용품까지 보여줘 침몰 당시의 '타임캡슐'이 되기도 한다. '신안선' 발굴 이래 서남해역에서는 모두 14척의 고선박이 발굴됐다. 이 중 10척이 고려 때 선박이고 신라•조선 때 각 1척, 나머지 2척은 중국 배다. 2013년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저에서 발굴된 '영흥도선'이 바로 통일신라시대 배다. 철제 솥 10여점과 도자기, 최고급 도료인 황칠 등이 이 배에서 나왔다.

▶지난 6월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의 풀등 인근 바다에서 중국 원나라 시대의 도자기가 나왔다고 한다. 어망에 걸려 올라온 이 도자기를 인천일보 현장 취재팀이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다. 대이작도는 과거 중국과 교역하던 배들의 피항지였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측도 대이작도 주변이 고대 무역항로여서 대규모 해저 유물과 고선박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 앞바다에서 '보물선'이자 '타임캡슐'이 건져 올려질 날이 기다려진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