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 언론인

파리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에는 한국에서 오는 친지들의 교양 있는 다양한 관심에 따라 예상하지도 않았던 곳을 알게 되고 자주 찾게 된 경우가 많다. 근대건축에 관심이 많은 친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찾던 곳은 르 코르뷔제가 설계한 라 로쉬 쟌느레 저택과 빌라 사보아였다. 건축학과 입학과 동시에 배우게 된다는 빌라 사보아는 파리 교외 지역에 있어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파리 16구 고급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라 로쉬 저택은 자주 찾아서 관리인들과도 가까워졌다. ▶독일의 현대건축을 대변하는 바우하우스의 발상지 바이마르와 데사우, 그리고 베를린에서도 현대 건축선구자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지만 파리에 집약되어 있는 저명한 건축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파리 시내를 거닐면서 크고 작은 건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을 설계하고 감독한 건축가의 이름과 건설연도가 벽면에 기록되어 있다.

건축가의 작품(건물)에 실명과 연도를 기록해 놓아 도시 전체가 건축가들의 경연장 같은 느낌이 든다. ▶인천시가 도시공사와 함께 중구 송학동에 있는 이기상 (1936~2016) 회장의 저택을 근현대 건축교육 및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했다는 낭보다. 이 회장의 저택은 1977년도에 김중업과 함께 한국건축계의 대부로 꼽히는 김수근(1931~1986)이 설계했다. 생전에 주택설계는 마다했지만 인천에 살면서 이 회장과 절친했던 그의 아우 김수만(인천체육인회 고문)의 권유로 설계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동안 개발우선주의로 치닫던 인천시가 개인저택의 건축학적, 그리고 문화적 가치에 주목했다는 것은 오랜만에 인천시민의 문화적 긍지를 높이는 쾌거다. ▶현대건축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도시의 품위와 주택의 품격을 높여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개인의 주거공간을 보다 우아하고 쾌적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개발우선시대에 익숙했던 보다 빠르고 보다 저렴하게 보다 많은 주택을 건설하던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념비적 건물의 보존과 활용이 선행되고 가치를 인정하는 원칙이 요구된다. ▶인천시의 김수근이 설계한 이기상 저택 매입 소식과 함께 법원에서는 미추홀구에 소재한 소월재에 대한 유무형 자산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건물주 송재영의 보상금 증액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다. 1974년 인천시에서 분양한 국민주택을 증개축하여 인천시 건축상과 행정안전부의 향토자원 등에 선정된 주택의 유무형 자산 가치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으로 인정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