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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칼럼] '도산로 22번길'과 '송도달빛축제공원역'
[조우성 칼럼] '도산로 22번길'과 '송도달빛축제공원역'
  • 인천일보
  • 승인 2020.07.27 18:25
  • 수정 2020.07.27 18:24
  • 2020.07.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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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8월, 일본을 통일해 의기양양했던 풍신수길은 50이 넘어 겨우 얻은 아들의 요절로 크게 낙담한다. 그는 그 해 12월 은퇴하여 태합(太閤)으로서 “명성과 권세를 후세에 전하는 일”에 집착하다가 이듬해 조선을 침략한다. 헛된 욕망으로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1598년 62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난다.

이순을 겨우 넘긴 목숨을 부지하느라 저지른 죄값은 얼마나 컸던가? 혈육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측실이 생각지 않던 아들을 또 낳자 조카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던 일을 되돌리려고 조카 히데쓰구를 무참히 자결시켰던 인간이 그였다. 그런 그를 일본서는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시대 '3영걸(三英桀)'로 숭상하고, 매년 성대한 축제를 연다.

일본사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시대(1568년~1603년)를 일러 '아즈치모모야마지다이(安土桃山時代)'라 하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머물던 교토부(京都府) 후시미(伏見) 지역의 땅이 후에 '모모야마(桃山)'로 불리게 된 것을 기화로 그가 권력을 잡았던 시대를 '모모야마지다이(桃山時代)'라 일러 왔던 것이 저들의 역사 기록이다.

그로부터 3백여 년 뒤 조선을 강점한 일본은 이 땅을 영구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식 지명을 강제했다. 우리식 지명 사료의 하나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지금의 중구 도원동 일대를 '장사리(長沙里)'로 밝혀 적었다. 개항 전 이 일대가 모래사장이 길게 드리워진 아름다운 해안이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게 해 주는 고유의 땅이름이었다.

그것을 조선총독부 인천부가 얼토당토하지 않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전국시대의 명칭인 '도산시대'의 '도산'을 따서 '도산정(桃山町)'이라 했다. 광복 직후 시 지명위원회가 이를 왜색이라고 개명하면서 '도(桃)' 자를 버리지 못한 채 '무릉도원'에서 따 온 '도원동(桃源洞)'이라 한 것은 퍽 아쉬운 일인데, 황당한 것은 아직도 '모모야마'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현 인천시 중구 도원동주민자치센터 앞 전봇대에는 '도산로 22번길'이란 표지판이 버젓이 붙어 있다. 영문을 모르는 이들은 이곳이 '도산(島山)' 선생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 여기겠지만 인천시 중구가 나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명으로써 기리는 꼴이니 이런 망신살이 또 없다. 요즘 유행어 가운데 '토착 왜구'란 게 있는데, 그보다 더 지독한 예가 아닐까?

도원동 주민이나 이곳을 오가는 이들은 '도원로 50번길 12호' 바로 건너편의 집 주소가 '도산로 21번길 23호'인 까닭을 알 길이 없었을 것 같다. 행정의 무지가 빚어낸 이런 희화적 촌극이 수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싶은데, 이번엔 도시철도건설본부가 일을 냈다. 신도시 지하철 역 이름을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이라고 명명해 발표한 것이다.

이를 나눠 보면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이다. 무려 명사가 5개나 이어진 긴 이름이다. 이는 지하철 이용자의 편의보다는 해당 지역 주민의 희망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르기 불편할 뿐더러 의미상 문제도 크다. '공원역'이나 애초의 공원명인 '달빛공원역'으로 불릴 공산이 클 뿐 아니라 지역사적으론 '도산'과 별 차가 없는 친왜색(親倭色) 작명인 것이다.

애초에 인천엔 '송도'라는 섬이 없다. 지리적, 역사적 근거도 없이 일제가 1939년 인천부 '옥련리(玉蓮里)'를 청일•러일전쟁에서 승전한 저들의 군함 이름을 차용해 '송도정(松島町)'이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제 또 군국을 상징하는 명칭을 역명에 넣은 것이다.

펜타포트 이후 조성된 '달빛축제공원'이 '송도국제도시', '송도랜드마크시티', '인천타워' 등과 경쟁 끝에 뽑혔다는 얘기지만 이 역명은 수인선 '송도역'과의 혼돈도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송도'와 '축제'를 강조하기보다는 차라리 원래의 공원명을 따 '달빛공원역'이라 했더라면 정서적, 미학적, 공간적 포용성을 지닌 전국 유일의 역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연수구의 신도시가 '송도동'으로 정해질 무렵이었다. 당시 구청장은 “송도라는 명칭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주민이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인천일보을 통해 강변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송도'는 진정한 '국제도시'가 아니다. 이름으로써 도시가 국제 경쟁력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명을 '뉴욕'을 연상시키는 '센트럴파크'나 영어 '테크노파크'라 해서 '송도'가 국제도시가 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일본이 오늘도 기리고 있는 제국시대의 군함이름을 인천의 미래를 이끌고 갈 신도시와 역명으로 후세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주필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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