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名可名(명가명), 非常名(비상명). 無名(무명), 天地之始(천지지시). 有名(유명), 萬物之母(만물지모)…”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곧 이름의 주인은 아니다. 이름 없는 데서 하늘과 땅이 비롯되고, 이름 있는 데서 만물이 태어난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1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어떤 존재에 이름을 붙였을 때, 항상 그 이름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우리는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이름을 지어야 비로소 관계를 맺고, 긍정할 수 있다. 그런 이름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

일제 때 이름인 작약도도 그렇다. 본디 이름 '물치도'를 되찾았다. 인천시 동구는 엊그제 구내 유일한 섬 작약도(芍藥島)의 지명을 물치도(沕淄島)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국가지명위원회가 만석동 산3번지 일원 작약도의 명칭을 물치도로 바꾸는 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바뀐 작약도의 고유 이름을 찾으려고, 구가 지난해부터 지명 변경 작업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다. 대동여지도나 동여도 등 조선시대 후반에 제작된 지도엔 작약도가 모두 물치도로 적혀 있다. '물치'란 영종도와 월미도 사이에서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다'는 지형적 특성을 뜻한다.

작약도란 이름은 언제 이뤄졌을까.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때 섬을 매입한 일본인 화가가 섬의 형태를 보니, 작약꽃 봉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 일본식 이름이 100년 넘게 이어졌지만, 이제서야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우리 고유의 지명이 어찌 작약도뿐이겠는가. 전국에 걸쳐 일본식으로 지어진 이름을 환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빼앗겼던 들'에 이미 오래 전 '봄'은 오지 않았는가.

월미도에서 2㎞ 떨어진 물치도의 경우 1960∼70년대만 해도 연간 25만여명이 찾는 수도권 대표 휴양지였다. 그러다가 2013년 섬과 육지를 오가던 여객선이 끊긴 뒤 무인도로 남았다. 물치도는 1996년 1월 유원지로 지정된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면서, 결국 개발되지 않은 채 지난 7월1일부터 자연녹지로 환원됐다. 인천시가 물치도 공영개발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올해 초 섬 소유주 변화로 계획은 틀어졌다.

소싯적 만석부두에서 배를 타고 물치도로 건너가 섬 주변을 돌아봤던 기억이 새롭다. 섬은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아주 울창했던 숲과 우물 등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추억한다. 물치도란 이름을 다시 찾은 만큼, 예전에 많은 시민이 향유하던 때로 되돌아 갔으면 싶다. 물치도를 시민 품으로 돌려주자는 얘기다. 섬을 장기간 방치하면서 더러 황폐화한 곳도 있지만, 섬 소유주와 시가 머리를 맞대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루빨리 물치도에서 노닐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