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이 있었다. 각각 야구_태권도 선수 출신의 보석_현경 부부는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장모님 산소를 찾는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다가 서로 눈뭉치를 던지면서 죽일 듯이 부부싸움을 벌인다. 이윽고 카메라가 롱샷으로 바뀌면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이 흐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백발의 노부부는 “참 좋을 때야”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때 화면 아래쪽으로 자막이 흐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찰리 채플린)

▶요즘 희한하게 돌아가는 강남아파트발 부동산 사태를 보노라면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도 말을 바꿨을 것 같다.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온통 희극”이라고. 경북대 전자공학과 70년대 학번들의 인생유전 얘기도 강남아파트가 소재다. 당시 백색가전 위주이던 S전자는 수원과 구미에 공장이 있었다. 구미 근무를 지원한 졸업생들은 오래지 않아 대구에 아파트를 장만한다. 수원공장으로 간 졸업생들은 강남에 어렵사리 아파트를 마련한다. 20~30년이 흘러 퇴사 무렵이 되자,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도 사는 처지가 엄청 다르더라는 것이다.

▶정부의 강남 아파트발 부동산 정책에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부동산 대책이 21번째냐, 4번째냐를 놓고 장관과 국회의원간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양포' 세무사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파트를 판 후의 양도소득세 신고 서비스를 포기한 세무사다. 부동산 세제가 너무 뒤엉켜 돈벌이는 되지만 세무사도 두 손 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외국 세무사에 맡겨야 하나. '청무피사'라는 유행어도 있다. '이판에 청약은 무슨, 그냥 피 주고 분양권 사'라는 뜻이다.

▶최근 부동산 대책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강남 아파트 값이 널을 뛰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청와대, 국회, 정부의 고관대작들이 알짜배기 아파트를 몇채씩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국회의장님부터 수년 새 집값이 수십억 올랐다고 한다. 그러면 부동산 대책을 터뜨릴 때마다 뒤돌아 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강남아파트는 두고 시골 지역구 아파트를 팔았다고 해서 “지역구를 처분하냐”는 촌철살인도 나왔다. 코미디같은 장면들이다.

▶다시금 과거 청와대 정책실장의 명언이 떠오른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 정답이다.

강남 아파트는 흑산도 홍어와 같다. 1마리에 40~50만원 주고 흑산도 홍어를 먹는 이도, 2~3만원 주고 칠레산 홍어를 먹는 이도 있다. 내버려 둬도 아무 일 없지 않은가. 내가 먹어봐서 아는데, 모두가 흑산도 홍어를 먹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홍어특별대책에 나서는 순간, 우리는 칠레산 홍어마저도 먹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