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소위 유신군대 내무반의 신병 신고식. “야 신참, 집이 어디야” “울산입니다.” “울산이 다 니네 집이야? 울산시내는 맞아?” “아닙니다. 울주군입니다” “그렇지? 계속 읊어 봐” 더욱 주눅이 든 신병은 읍내도 아닌 면, 동도 아닌 리 단위의 고향집 주소를 신고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군민' '면민'들은 '시민'들에 대해 까닭모를 콤플렉스를 지녔던 옛 풍경이다.

▶지난해 2월 경북 상주시 공무원들이 모두 검정 넥타이와 검은 정장 등 상복차림으로 출근했다. 한달 사이 인구 10만명선이 붕괴된 데 대한 충격 요법이었다. 자칫 군으로 전락해 부시장은 3급에서 4급으로 내려가고 실·국도 1개가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상주시는 1965년 26만5000명을 정점으로 50여년간 인구 감소가 계속돼 왔다. 10만명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타지에서 유학 온 대학생이 전입신고를 하면 학기마다 20만원씩을 주고 20ℓ짜리 쓰레기 봉투 36개를 제공하기도 했다. 상주시뿐만 아니었다. 군 부대가 많은 지역은 군인들 전입신고 캠페인까지 벌였다. 주소가 다른 지역인 보건소 공중보건의나 간호사들도 눈총을 받을 지경이었다.

▶여행 길에 '경축 시 승격 00주년' 등의 플래카드를 마주친다. 반세기 넘도록 이어 온 도시화 콤플렉스의 잔재다. '도시면 다같은 도시냐'며 특별시, 직할시, 광역시 등 도시 계급장도 늘어났다. 1995년에는 전국적으로 인접 시_군들을 통합, '시민'들을 양산해냈다. 최근에는 인구 100만 이상 도시들 중심으로 '특례시' 승격 운동이 한창이다. '특별한 예우를 받는 도시'라는 뜻인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생업에 바쁜 주민들에게는 말잔치일뿐이다. 2016년 10월19일 오후 1시, 인천광역시 인구가 300만을 돌파했다. '300만 카운트 다운' 행사가 벌어지고 '시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한층 높이게 됐다'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백성들보다는 사또나 아전들에게 더 좋은 일 아니었을까.

▶그 300만이 점점 떨어지더니 '295만명 벽'도 깨질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2035년 305만명'을 호언했던 인천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국장급의 인구 전담부서를 설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꼭 300만을 지켜야 하는가. 인천이 따돌렸던 대구가 금새 쫓아오기라도 하는가. 다 부질없는 인구 키재기 놀음이다. 300만을 지키려고 돌아가실 분들 더 오래 붙들거나 전출을 금지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시골 빈 집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대전환의 팬데믹 시대다. 한 도시의 인구문제도 물처럼 흐름에 맡겨 두는 게 옳을 것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