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역사상 전무후무할 최대의 문화예술 프로젝트인 '뮤지엄파크' 건설은 인천시립박물관 이전안에서부터 출발했다. 초도순시차 박물관을 방문한 전임 시장이 교통이 불편하고 협소한 박물관의 옹색한 현실을 보고 “박물관을 이곳에 이전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당시 관장이었던 필자는 이에 “임기가 끝나시기 전에 이전 부지를 확정해 주셨으면 한다”고 답했다.

그날 나눈 대화가 씨앗이 되고, 1만5000여평의 부지를 인천시에 기부채납한 DCRE, 부지 내 극동방송 사택의 활용 방안을 논의했던 남구청, 서울시 시립미술관 설립 당시 천경자 컬렉션을 유치했던 전임 부시장 등의 성원과 박물관에서 20여명의 학예관, 학예사가 1여년간 연구 끝에 마련한 건설안에 흔쾌히 동의한 시장의 용단은 인천 문화예술계의 큰 선물이었다.

그 과정에서 관련 집행부의 고위 간부들은 입안 당시부터 뮤지엄파크 안을 적극 호응해 준 반면, 주무자 일부는 기부채납받은 땅을 되팔아 인천시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해 잠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뮤지엄파크의 규모와 운영 방안 등을 상세히 청취한 직후 TF팀을 꾸리라는 시장의 지시가 있자마자 그런 매각 논란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더불어 지난 20년간 부지 선정조차 불투명했던 인천시립미술관의 건립 부지를 뮤지엄파크에 넣자는 안도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그런 가운데 애초의 이전안 출발점이자 1946년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서 2만여 점의 유물을 보유한 인천시립박물관을 부지 전면에 세우고, 후면에 이제 출발을 모색해야 할 미술관을 배치하자는 의견에 역시 모두 수긍했다.

문화예술의 역사적 무게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큰 무리가 없는 계획이었지만, 일부 미술계 인사는 “미술관을 화장실처럼 부지 뒤편에 두었다”고 했고, 심지어는 “시립박물관이 국립화해 뮤지엄파크에서 나가야 한다”는 허튼말까지 해 지역사회의 분란을 자초했다. 거기에 모 대학 부설 용역팀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춤을 추었다.

용역팀은 양측의 의견을 조율한답시고 박물관과 미술관 건물을 전면에 나란히 짓자는 건축안을 내밀었는데, 두 건물의 층수와 평수가 한 층, 한 평도 안 틀리게 똑같아서 뜻있는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두 건물은 각기 역사와 역량과 전시 내용에 따라 구체적 모양은 물론 크기와 용도가 다를 것이 분명한 이치인데도 그렇게 발표했다.

그 같은 안(案)은 동서에 유례가 없는 획일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날 뜬금없이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인천시립현대미술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에 이의를 제기하자 최근엔 또 이를 바꿔 '동시대미술관'을 만들되 '상설 전시관'이 없는, 상궤를 벗어난 초유의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미술계가 어떠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합의된 안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로 귀착되는 일들이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예술 환경을 고려치 않는 '현대미술' 안은 졸속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의 현대미술관이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인천에 또 '현대미술관'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경쟁력을 잃은 것이었다.

더구나 지역 미술관이 지역의 미술 유산을 수집_소장하고, 그를 통해 2세들에게 지역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교육시키는 사회교육기관이라면 이제라도 추진방향을 바꿔야 한다.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서는 경쟁력 있는 미술관이 될 수 없다. 지역 미술관들이 별 성과 없이 막대한 예산만 축내자 정부가 미술관 건립에 국비 보조를 없애버린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우리는 지역의 소중한 미술 유산을 되돌아봐야 한다. 개항기 때 활동했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이자 한국화 대가인 이당 김은호, 추사 이후의 명필인 검여 유희강, 최초의 성화가(聖畵家)인 장발, 미술사의 태두였던 우현 고유섭, 최초의 현대 미술평론가였던 석남 이경성, 판화 개척가인 김상유 선생 등이 모두 인천의 미술인 아닌가.

그분들은 인천뿐만이 아니라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 온 선구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인천 어느 곳에도 그 발자취와 작품을 대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인천이 '미술사 망각 지대'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었다. 최근엔 검여 선생의 작품이 몽땅 성균관대로 넘어간 불상사마저 있었다. 그런데도 현업의 장을 연상시키는 '동시대미술관'을 만든다니 깊이 토구해 볼 일이다.

인천은 인구 300만의 대도시다. 그러나 소위 '수도권정비법'이란 것에 묶여 정규 예술대, 미술대 한 곳이 없고, 인사동_평창동 같은 화랑, 번듯한 전시장이 없는 '미술 인프라 제로'인 도시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관 준비조차 안된 정체성 불명의 미술관을 서둘러 짓자고 해서는 안된다. 미술 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미술관도 차분하게 추진하는 게 상식에 맞다.

 

주필 조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