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미 해병 1사단 장병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미 해병 1사단 장병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트럭.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트럭.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1951년 1월5일 ‘1·4후퇴’로 인천항에서 피난민을 태우고 있는 상륙함.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1951년 1월5일 ‘1·4후퇴’로 인천항에서 피난민을 태우고 있는 상륙함.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중 미 해병대가 포로들을 인천에 집결시킨 모습.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중 미 해병대가 포로들을 인천에 집결시킨 모습.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 인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 인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인천 상점가. 짜장면과 냉면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인천 상점가. 짜장면과 냉면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포화와 총성이 빗발치던 전쟁에도 삶은 계속됐다. 좌판이 늘어선 길은 갈 곳 없는 발걸음을 맞았다.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궁핍한 현실에도 명절은 찾아왔고, 잠시 평온함을 맞은 거리에선 짜장면과 냉면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6·25전쟁 당시 인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세를 올리던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 시내를 가로질러 서울로 진격했고, 혹한의 추위 속에 '1·4후퇴'에 직면하기도 한다. 피난 행렬에는 시민들도 따랐다. 인천항에 정박한 배는 발디딜 틈도 없었다. 70년 전 찰나의 순간들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세월을 가로질러 지금 우리에게 왔다.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관련기사
[6·25전쟁 70년] 상륙 성공 이면엔 부서진 일상이 있었다 아픔의 기록이다. 70년 전 인천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두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포격으로 지붕이 부서진 건물과 얼기설기 늘어선 천막은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인천일보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국사편찬위원회가 보관 중인 전쟁 당시 인천의 사진을 소개한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된 자료들이다.▶관련기사·화보 3면군용 트럭과 군인들 틈바구니에서도 삶을 지탱하려는 몸부림은 이어졌다. 38선이 무너지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1·4후퇴'에 맞